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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내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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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아빠 Jan 10. 2022

삶을 마주하는 자세

삶이 어떻게 더 완벽해


 부대를 옮기고 3달 여가 흘렀다. 6년 만에 야전부대에 오니 적응해야 할 것이 많았다. 감사하게도 좋은 지휘관 덕분에 휴가는 잘 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들은 좀체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아내와 떨어진 지 꼬박 36일이 지났다. 3일만 견디면 아내를 볼 수 있다. 혹자는 결혼 10년 차에 지금도 그렇게 둘이 좋냐고 묻곤 한다. 그럴 때면 속으로 반문하곤 한다. 좋지 않을 이유가 있거나 혹은 안 좋아야 하는 거냐고.


아이유의 "Strawberry Moon"에 나오는 구절이 아내를 그리는 내 마음을 더욱 흔들어 놓곤 한다. 아내와 살아가는 내 삶은 이 구절이 딱 어울리는 듯하다.


삶이 어떻게 더 완벽해 ooh
다시 마주하기 어려운 행운이야


서른 살을 맞이하는 아이유가 아마도 자전적인 이야기를 이 가사로 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녀가 느끼기에 그녀의 삶은 참으로 완벽하고, 다시 마주하기 어려운 행운일 것이다. 그녀 자신의 주관으로도 그렇지만 객관적으로도 대한민국에서 아이유로 살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일 것이다. 아이유와 내 삶을 비교한다면 객관적으로는 딱히 내 삶이 행운이라고 느껴질 만하진 않을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저 가사를 들으며 내 이야기라고 느낀다. 더 이상 완벽할 수 없고 다시 마주할 수 없는 이 행운 가득한 삶 덕분에 온몸에 심장이 뛰는 매일을 느끼고 있다.


어제도 떠올랐지만 1월 1일이라 더 의미 있다면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떠올랐고, 내가 죽은 후에도 떠오를 테지만 내가 있을 때 떠올랐기에 더 의미 있다.


12월 31일 한해의 끝에 유튜브로 시청하는 송구영신 예배에서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할 때 내 핸드폰 시계는 이미 2022년 1월 1일 00시를 지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인터넷 방송의 시차가 존재하는 듯한다. 찰나이지만 과거를 마주한 그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4평 남짓한 작은 숙소에서 혼자 새해를 맞이하며 내 삶이 완벽하다고 한다면 누군가는 정신승리라며 비웃을지 모른다. 아내가 보내준 말씀 카드를 보다가 비몽사몽 잠이 든다. 새해 벽두에 부대원들과 함께 태백산맥에 올라 새해 다짐을 해야 했기에 채 얼마 자지도 못하고 두 눈 비비며 사각의 좁은 방에서 혼자 눈떠야 했다.


사람들은 상징을 좋아하는 것 같다. 2021년 12월 31일의 해와 2022년 1월 1일의 해는 다를 바 하나 없는 우주의 순환일 뿐인데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1월 1일 이날은 내가 태어난 지 꼬박 13,622일 되는 날이었다. 이렇게 보면 사람들이 세기 편해 좋아하는 5, 10으로 딱딱 나누어 떨어지는 날도 아니라 나에겐 그리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새해라는 의미를 부여하면 100살까지 사는 인생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맞이할 수 있는 새해는 불과 60~70여 번에 불과할 것이니 진짜 값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의미부여 때문에 매일매일 맞이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잊곤 한다. 60~70번의 상징적 의미인 새해보다 일상의 3만 일이 더 의미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 이 젊은 순간 한시라도 아내와 함께 있고 싶지만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도 완벽할 수 있다. 사명을 감당하는 삶. 그 가운데에 가족을 나의 사명을 위해 희생시키지 않는 삶. 각자의 사명을 감당하며, 사명을 준비하는 삶.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함께 동행할 수 있는 아내가 있다는 것. 어찌 더 완벽할 수 있을까. 또 이런 삶을 내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또 누릴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기에 이 삶은 다시 마주하기 어려운 행운이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기억을 잊지 않고 다시 환생한 지은탁과 같은 천년만년 가는 슬픈 사랑은 동화 속 이야기지만 지금 나의 삶은 동화 같은 현실이다.


이런 풍경을 마주할 수 있고 덕분에 내 삶이 완벽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건 좋은 환경에 살기 때문에 내 삶이 완벽한 것이 아니라 삶을 완벽하게 마주할 용기가 있어 완벽한 것이다.


굳이 비교할 필요 없다. 내 삶은 내 삶으로 더없이 완벽하고, 행운 가득한 삶이다. 아이유 역시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느끼고 있을 테다. 내 아내 역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작은 깨달음 하나는 삶을 마주하는 자세가 그랬기 때문에 완벽하고 운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다. 어떠한 환경에서 태어났더라도 우리 모두는 태어남으로써 세계인권헌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천부의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 세상이 더러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지만 세상 보고 인정해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은 나 자신이 나의 천부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의외로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것.


2022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예수님이 태어난 이후 우리는 서기라는 해를 세는 방법을 전 세계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는 무신론의 전체주의 독재국가인 북한도 신년 축제에 주체력이 아닌 서기력인 2022년을 써붙이고 기념했다. 1년이라는 시간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365일의 시간이다. 365일은 지구가 스스로 돌며 태양을 마주했다 등 돌렸다 하는 하루의 시간이 365번 축적된 것이다. 이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우주의 원리에 의한 시간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의 탄생 이후 생긴 서기력을 바꾸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단, 12월 25일 태어나시고 5일 후를 서기력 1년이라고 하진 않는다.) 하지만 매일을 마주하는 내 마음은 내가 어찌할 수 있다. 새해처럼 새로운 다짐을 매일 할 수도 있고, 크리스마스처럼 축복되고 행복한 사랑 넘치는 시간을 내 아내와 매일 보낼 수도 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삶과 시간을 내가 어떻게 마주하느냐 그리고 그런 나를 스스로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달려있을 뿐이다.


지난 세월 사명 감당하며 지나왔던 나의 시간이 물질화되어 얻어진 훈장 같은 나의 정수들. 작은 쇳조각 하나에 담긴 애환 속 많은 영혼을 구했다 자부한다.


내 삶은 동화와 현실 중간에 딱 걸쳐있다. 나의 사명은 현실 그것도 참으로 차갑기 그지없는 바닥의 현실에 존재한다. 그 현실에 상처받은 영혼과 동행하고 함께 울어야 한다. 두 손잡고 다시 일어나 동화 속 삶으로 계속 보내줘야 한다. 그 차가운 현실 속 무기는 오직 기도뿐이다. 버티기 힘들 테지만 감사하게도 나의 일부는 동화 속에 머무른다. 더 이상 완벽할 수 없고, 마주할 수 없는 행운이 가득한 이 동화엔 사랑하는 아내와 자연 속에 푹 빠져 지내는 아이들이 함께 한다. 엄마도 있어 든든하기 그지없다. 이 동화는 어떠한 비유도 은유도 담고 있지 않은 동화 이야기 그 자체다. 이솝 우화 같은 게 아니란 거다. 이 동화가 나를 지탱해준다. 현실이라는 사명에 던져진 내가 이런 동화를 써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차가운 현실을 오롯이 마주하며, 맨 손으로 싸우던 나를 그 누구보다 내가 사랑했던 덕분 아닐까.


2022년 1월 1일 새해를 살지 않고 13,622일의 내 삶을 살아간다. 매일을 새해처럼 다짐하며 정진한다. 매일을 크리스마스처럼 축복하며 사랑한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나의 삶이기에 더없이 완벽하고, 마주할 수 없는 행운이며, 이보다 더 꿈같은 순간이 없을 만큼 놀랍다. 3일 후 내 앞에 기적처럼 있을 아내를 생각하며 앞으로 아내와 변함없이 함께 마주할 이 삶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완벽하고 행운 가득할지, 설레어 잠 오지 않는 밤을 달랜다.


약간의 보정은 사진을 완벽하게 만들어준다. 보정을 잘하려면 압축된 이미지인 JPEG가 아닌 날것의 RAW로 찍어야 한다. 날것의 삶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 색은 내가 입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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