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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름, 아이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제주 아빠의 좌충우돌 여름휴가 이야기 (2)

by 제주 아빠

* 맑은물어진별스테이 루프탑에서 찍은 타운 전경. 정갈하게 구성된 타운에는 예쁜 수목들도 균형 있게 있고 잔디도 마당도 잘 구성되어 있다. 우리 집 루프탑 정면으로는 한라산이 보인다. 태양광 전지판은 친환경 에너지 사용을 통해 환경 보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우리 가정의 의지다. 해가 아주 잘 들어 우리나라 평균 발전량 1일 10Kwh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발전 능력을 보여준다. 자랑스럽다.


야속하게도 휴가기간은 시간이 빠르게도 흐른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아마 휴가 중에 발견한 게 아닐까 싶다. 일할 땐 시간이 안 가더니 왜 이렇게 놀 땐 시간이 빨리 가기만 하는가! 잡을 수 있다면 날아가는 이 시간을 잠자리채로 낚아채서 채집통에 고이 보관하고 싶다. 아무리 휴가 중이라고 하지만 일요일엔 주일 성수를 지켜야지. 아침 일찍 채비를 하고 교회 갈 준비를 한다. 오늘은 마당에서 가족 모두가 수영을 할 요량이다. 아이들은 별로 크지 않은 수영장이지만 가족 모두 함께 수영하는 것을 참으로 좋아한다. 수영이라기보다는 사실 물장구에 가깝다. 특히 아빠가 해주는 우리만의 놀이 '1단계, 2단계'를 좋아한다. 묘사하자면 물속 장애물 넘기 정도인데 아이들은 이것을 '1단계, 2단계'라고 부른다. 아빠가 몸으로 장애물을 만들면 아이들은 그것을 통과하는 게임이다. 순발력 있게 아이들의 능력에 맞게 다음의 장애물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보통 20단계까지 한다. 이런 작은 놀이에도 아이들은 정말 까르르, 깔깔 넘어가도록 좋아해 준다. 이렇게 재밌게 즐겨주니 놀아주는 맛이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놀이는 나의 체력은 아끼고 애들만 진 빠지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빠의 역할은 그저 수영장 한가운데 편히 누워서 다리를 이렇게, 팔을 이렇게, 몸을 이렇게 해줄 뿐이다. 어릴 때 나는 창의적으로 잘 노는 아이였는데 그게 이렇게 빛을 발할 줄 그땐 몰랐다. 뿌듯하다.


교회 다녀와서 바로 입수. 뜨거운 햇살에 적당히 데워진 수영장 물 덕분에 추위를 너무도 잘 타는 작은 아이도 잘 논다. 한 여름엔 정말 미온수 수준의 온도다.


예배를 드리고 마지막 광고 시간에 신자분 한 분의 아드님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입관예배를 해야 하는데 가족이 없어서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의 거의 없다는 말에 아내와 나는 의무감을 느낀다. 결국 아이들에겐 양해를 구하고 밤에 놀자고 말하고 제주시까지 다녀온다. 매번 내 휴가 때 교회에서는 어떤 일이 생긴다. 이것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웃 사랑의 사명이겠거니 하며 좋은 마음으로 그분의 안식을 염원한다. 제주시에 들른 김에 장도 보고 맛집도 들렀다가 집에 오니 아이들은 신나서 여전히 수영중이다. 서둘러 장 본 것을 풀고 저녁 채비를 한다. 제주에 오고 나서는 팟럭(potluck ;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서 나눠 먹는 식사)이 익숙한 식문화가 되었다. 날씨가 특별히 궂거나 하지 않으면 마당은 최고의 식사 장소다. 게다가 수영하는 아이들을 지켜봐야 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같이 수영할 때도 있어 마당만큼 좋은 식사 장소도 없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모두들 자연스레 집 안으로 모여들었다. 우리 집 안에서 식사를 하는데도 팟럭이 된다. 몇 가정이 더 각자의 음식을 싸들고 우리 집으로 모인다. 모처럼 아이들과 분리돼서 저녁을 먹으니 조용하다. 어른들끼리 신나게 수다를 떤다. 그래 가끔 엄빠들도 이런 시간이 필요해.


어른들의 시간. 어른들도 사실 놀고 싶다. 밤새 놀고 싶다. 쉬지 않고 놀고 싶다. 애들만 그런 거 아니다.


날씨가 좋으니 아이들은 밤이 늦도록 수영한다. 너무 시끄럽게 수영하지만 않으면 특별히 이웃에게 해가 갈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가. 신나게 놀다 보면 소리도 지르고 물장구도 많이 튀니 적당히 주의시킬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이럴 때 아이들을 주의시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하지 말라는 잔소리보다는 맛있는 것으로 꼬시는 거다. 오늘은 모처럼 이마트에서 사 온 배홍동 비빔면을 준비해준다. 5개를 끓였는데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사라진다. 대단한 아이들이다. 잘 먹으니 좋고 쑥쑥 크니 어여쁘다. 어른들 역시 오늘은 모처럼 아이들의 방해 없이 잘도 먹는다. 밥그릇과 국그릇, 밑반찬을 덜어낸 접시와 숟가락, 젓가락을 정갈하게 테이블 위에 준비해서 먹는 식사가 참으로 오래간만이다. 특히 오늘의 메뉴는 이제 제주 할머니가 다된 나여사의 비빔밥이다. 콩나물을 제외한 모든 나물이 제주에서 직접 캐거나 이웃에게 나눔 받은 싱싱하기 그지없는 채소로 만들어졌다. 특히 고사리와 가지, 호박이 일품이다. 제주산 채소로만 만들어진 비빔밥을 먹다 보면 왜 전주가 비빔밥으로 유명한지 모르겠다. 비빔밥은 제주도가 더 유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올봄에 직접 따오신 고사리가 아직도 남아있다. 작년엔 엄청 따서는 육지 지인들에게 나눔도 하고 팔기도 하셨는데 올해는 우리 가족 먹자고 많이 남기셨다. 고사리의 맛을 알아버린 이상 어찌 보면 파는 것보다 우리가 먹는 게 더 이득이라는 생각이 드신 것 같다. 나 역시 매우 동의한다. 나랑 아들내미는 고사리 킬러다. 고사리 육개장, 고사리무침, 고사리 비빔밥 그 어디에라도 들어간 제주산 고사리를 참 좋아한다.


고사리 : 제주산, 가지 : 제주산, 호박 : 제주산, 무 : 제주산, 감자 : 제주산, 당근 : 제주산, 콩나물 : 하나로마트 이런데도 비빔밥의 원고장이 제주가 아니라고?


신나게 놀고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침대에 누워 아내와 죽음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휴가 나오면서 조금 먼 지인의 죽음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또 교회에서 또 다른 죽음을 알게 되었다. 죽음은 사실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주변에서 죽음을 접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게다가 그 죽음 모두가 자신의 선택에 의함임을 알고 삶에 대해 곱씹어 본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살아 있다면 그게 아무리 어렵고 고통이어도 반드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나타날 것이다. 죽음은 문제를 끝내는 게 아니다. 또 다른 문제를 만들 뿐이다. 제주에 터를 잡고 맑은물어진별스테이에 가족이 함께 오순도순 살고 있고 글과 사진으로 보면 행복하기 그지없는 우리 가정이지만 사실 넘어야 할 산이 많고 말 못 할 어려움도 갖고 있다. 희망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좋은 것만 생각하는 것이 우리 가정의 모습이다. 당장에 좋은 이웃, 좋은 친구, 좋은 부모 덕분에 지금은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지만 언제 최악의 순간으로 치닫을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지금 웃을 수 있는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이렇게 추억을 쌓다 보면 그 어떤 어려운 순간이 와도 이 추억으로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모든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설 수 있게 만드는 힘. 추억을 많이 만들자고 다짐한다. 우주에서 방황하며 죽음만을 기다려야 했던 토니 스타크가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으로 붙잡고 있던 그의 가족들과의 추억처럼. 우리 가족 3,000만큼 사랑해.


교회에 도착할 때쯤 되어선 찬란한 해가 제아무리 수줍게 그 빛을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지경이 된다. 보랏빛의 하늘과 그 빛에 반사되어 같이 물든 구름이 조화롭다.


월요일 새벽 동이 텄다. 벌써 3일째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새벽기도를 통해서 하루를 더 길게 보내보려 한다. 우리 집 현관은 해가 뜨는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뜨거운 여름날 가끔 늦잠이라도 자면 현관 문고리가 데워져서 잡지도 못할 만큼 뜨거워지곤 한다. 아직은 새벽이라 선선하고 바람도 좋다. 멀리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가 붉은빛을 수줍게 간직한 채 구름 뒤에서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어젯밤 늦게까지 술을 마신 터라 숙취운전의 우려가 있어 아내에게 운전을 부탁한다.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도 즐겁게 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이렇게 즐겁게 놀 수 있는 매일을 주심에 감사드린다. 오늘은 아내가 일을 가야 한다. 원래는 방학이어서 1주일을 모두 쉬는 것이었는데 일이 틀어졌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일정은 계획대로 진행하는데 문제가 없다. 세계자연유산센터에 가기로 했는데 가기 전까지 또 신나게 수영을 하다 갈 생각이다. 집 코앞에 수영장이 있다는 건 이런 게 좋은 거다. 사실 우리나라 지방세법 상 고급주택으로 분류되는 기준 중에 수영장이 설치되어 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 세금이 확 올라간다. 어차피 그런 거대한 수영장을 설치할 여건은 되지 않기도 하고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가로 세로 2미터, 3미터의 인텍스 조립식 풀장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굳이 수영장을 설치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는다. 고작 3만 원 주고 당근 마켓에서 산 이 수영장을 3년째 잘도 쓰고 있다.


수영장을 설치하여 쓰는 여름 기간에 물 사용에 대해서 예민하게 생각해본다.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책무를 가진 대한민국의 민주 시민으로서 내가 무의미하게 사용하는 물이 어딘가의 물 부족에 한몫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작은 풀장이라고 하지만 한 번에 거의 6톤의 물을 받아야 한다. 우리 집은 상수도만 사용하는 개인 정화시설이 설치된 집이기 때문에 1톤 당 요금은 550원으로 가격이 비싸진 않다. 하지만 제주도는 전체적으로 물이 부족하여 추가적인 집수원을 건설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있고 게다가 이번 봄에 비가 너무 안 와 가뭄이 생겼다. 타운 내 마당에 있던 카나리아 야자수 두 그루가 고사했다. 다행히 엄마가 종종 물을 뿌려줘서 우리 집은 살렸는데 이렇게 계속 물이 부족하다면 언제 또 고사할지 모를 일이다. 오랜 경험으로 물을 오래 쓰는 방법을 찾아냈다. 물을 소독하고, 필터로 거르고, 산소 포화도를 계속하여 유지시켜주는 것이 그 방법이다. 한 번씩 물을 갈 때는 전체 물을 다 빼는 게 아니라 절반 정도만 빼고 절반만 다시 채우는 방식으로 유지한다. 뺀 물로 세차를 하거나 잔디와 나무에 물을 준다.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다면 물을 모아두었다가 쓰는 방식도 있다. 이렇게 해서 수영장이 설치되어 있는 한 달 동안 물을 두 번 받는 정도만 사용한다면 그나마 물을 아낄 수 있다. 그래도 매번 양심에 찔린다. 아이들에게 물장구를 너무 심하게 쳐서 물이 줄어들지 않게 하라고 당부한다. 앞으로 너희들이 살아갈 지구라고...


지구는 물이 있어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행성이다. 물은 우리의 근본이고 생명이다. 이런 물을 잘 쓰도록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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