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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는 과정이다.

브런치를 이용하세요.

by 제주 아빠

복직 후 바쁘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미뤄왔던 글의 초고를 마무리하고 출판사로 보냈다. 출판사 차원에서 내 글을 보고 기획출판을 해줄지 확신은 없다. 종종 내 글을 문예집에 실어주는 고마운 출판사이기 때문에 같이 작업할 수 있다면 참으로 영광이긴 하겠다. 설령 이번 시도가 어그러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완성된 초고라면 어느 출판사라도 제출해볼 수 있을 테고 기왕에 이렇게 된 거 내가 디자인을 직접 해볼 수도 있다. 전자책 시장도 꽤나 매혹적이다. 관련 강의를 들으면서 디자인을 배우고, 펀딩을 통하거나, 블로그, SNS 활동 등을 통해 차근차근 유명세를 만들어가면 책을 판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브런치도 그런 도구 중 하나일 수 있겠다. 중요한 건 내 글을 써보는 것과 평가받아보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잘 성장한다면 언젠간 작가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다.


문제는 브런치가 가진 한계와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다. 많은 브런치 작가들과 소통하고 그들이 쓴 글을 보면서 나름의 평가를 하다 보면 어떤 글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인데 메인에 떠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글은 너무나 잘 쓰였음에도 도저히 유명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차이가 도대체 무얼까? 사실 알 수 없다. 나름의 알고리즘이 있거나 정말로 에디터가 모든 글을 다 읽으면서 콕 찝어 승은(承恩)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메인에 뜨지 않는다거나 조회수가 높지 않다고 해서 겁먹을 필요가 없다. 주눅 들 필요가 없다. 브런치는 그냥 내게 있어서 끄적이는 삼성 노트에 불과하다. 이 정도 용기가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써야 한다는 것이다. 꾸준함. 이것이 어쩌면 브런치가 우리에게 시사하고자 하는 유일한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 브런치를 통해서 등단하거나, 출간 작가가 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브런치 작가 중 극소수일 뿐이다. 그분들은 우리에게 기억되는 별들 예컨대 시리우스, 데네브, 베가가 같은 존재일 뿐이다. 여전히 우리 모두는 별이며, 별의 밝기가 어둡다는 것은 그 별 자체가 어둡다기보다는 더 멀리 있어서 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 또한 그런 분들은 브런치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출판사와 기획을 통해 출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분들이다.


사실 내가 브런치에 기대한 것은 그런 능력이 없음에도 너무 좋은 소재가 있거나, 배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분들을 발굴하여 기회를 주는 플랫폼이길 바랐다. 하지만 브런치는 그런데가 못된다고 생각된다. 탈 브런치를 하는 분들도 많다. 다만, 나의 경우엔 이미 다른 글을 통해 밝힌 바와 같이 글을 쓴다는 것은 배설 활동과 비슷하다. 수많은 나의 상념, 감정 쓰레기 등을 활자라고 하는 배설물로 토해내는 것이고 브런치는 나에게 있어 최고의 화장실 같은 곳이다. (참고 : https://brunch.co.kr/@ohclever/20) 이곳에서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읽힐 것이라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엔디 워홀이 진짜로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유명해지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환호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 시대는 수많은 에세이 작가들이 살면서 느낀 상념들을 꺼내놓은 글에 환장하는 시대 아닌가. 그런데 그런 글에 환호하는 것은 인간이 바로 공감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면 코 막고 돌아서기만 할 것이다.


지금도 서랍엔 발행하지 못한 글들이 많다. 그때마다 무수히 떨어지는 상념이 있을 때마다 마음껏 휘갈겨놓았다. 다만, 발행을 하지 않은 것은 적어도 배설이 끝난 결과를 보여주고 싶지 과정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서다. 이 글에서 다소 냉소적이고 과격한 표현을 하는 것은 브런치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본질에 집중하자. 브런치는 과정이다. 브런치는 그저 우리에게 도구일 뿐이다. 브런치 작가 모두가 쓰고 싶은 열망과 이것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조회수가 낮다고 해서, 구독자가 낮다고 해서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자유까지 억압당할 필요는 없다. 그저 묵묵히 나는 써나가는 것이다. 꼭 브런치 공모전에 당선되는 승은을 얻는 기회를 바랄 필요도 없다. 브런치가 우리를 그렇게 대했다면 우리 역시 브런치를 그렇게 대해도 전혀 문제없다. 이번 출간을 위한 글을 쓰면서 기존에 썼던 브런치 글들이 나에게 북극성처럼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기준을 제시해주었다. 어찌 되었건 출간을 하려면 출판사에서도 가능성이 있어야 기획을 해줄 테니 책을 내고자 하는 '목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 나의 목적은 당연히 나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을 이루기 위함이라면, 출판사는 나와 같은 작가를 발굴해서 키워준다는 사회적 공헌도 있지만 결국 모든 회사가 그렇듯 이익을 보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브런치는 좋은 과정, 실험 도구, 언더그라운드 무대가 되어 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브런치를 통해 작가로 되는 길을 포기하길 권장한다. 브런치에 열심히 쓰기만 할 뿐 진짜 나의 발톱은 숨기길 권유한다. 브런치가 숨은 보석인 나를 발견하지 못하게 만들도록 하자. 그것이 브런치라고 하는 플랫폼을 성장시키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더욱 자세히 들여다볼 것이고, 발굴을 위한 방법을 고민할 것이고, 쉽게 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이 그저 읽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많이 읽으시면 되겠다. 하지만 내가 장담하건대 많은 주제를 접하며 읽다 보면 스멀스멀 마음속 깊숙이 나도 쓰고 싶다는 본능이 피어오를 것이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는 자손을 남기길 바라지만 인지적으로는 존재를 남기길 바란다. 글은 인간 존재의 Originality다. 용기를 내고 쓰자. 브런치를 과정으로 인정하자. 조회수, 구독자 수에 매달리지 말자. 그냥 쓰자. 마음껏 배설하자. 그렇게 막 싸지른 내 글을 보고 혹시라도 출판 제안을 받는다면 그 출판사는 정말 대단한 출판사인 것이다. 자비출판을 하자고 하는 게 아니라면 그게 정말 기획출판이라고 한다면, 진흙 속 보석인 당신을 발견한 그 출판사를 믿고 협업을 해도 되겠다. 설령 그게 아니어도 문제없다. 쓰다 보면 언젠가 정말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되니까. 그다음은? 브런치에 편하게 공모전 참여 버튼 눌러서 공모전 간다고 하지 말고 직접 출판사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


ps. 맞춤법 검사 도구로도 브런치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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