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중위 때 인사과장을 했다. 100명이 넘는 대대 간부에게 전파를 하려고 하면 문자를 쓰고 100명의 전화번호를 연명부 보면서 일일이 꾹꾹 눌러서 보냈다. 가끔 보내다가 오류가 나면 땀 뻘뻘 흘리며 다시 보내곤 했는데 정말 이렇게까지 비효율적이고 최악의 방법이 있을까 싶었다. 카카오톡이 나오고 나서는 발송하는 게 조금 편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카톡으로 하는 업무가 어딘가 모르게 마음 불편함을 가져왔다. 최근에 와서는 내가 생각한 그 일이 만연해있다는 것을 알았다.
카카오톡은 메신저이면서 동시에 소셜미디어다. 소셜미디어 안에 메신저의 범주를 넣는다면 같다고 할 수 있지만 MSN 메신저를 쓰던 시절이었던 고등학교 때를 생각하면 그 당시 메신저는 정말 대화를 위한 수단뿐이었다. 프로필 사진과 상태 메시지에 무언가를 입력하는 것은 거의 하지 않는 일이었고 우리 모두는 너나 나나 동그란 머리의 파랗거나 초록색인 그 모양이었다. 이 역시 폰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욕망이 투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대를 참 잘 만난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인해서 이제 컴퓨터 앞에서 한없이 기다려야 했던 메신저가 주머니로 옮겨갔고, 폰카로 자신을 표현하는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었으니 카카오톡은 전 국민 표준 메신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제 소셜미디어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심지어 얼마 전엔 대통령께서도 국가기반통신망의 일종이라고까지 하였으니 공인력까지 갖췄다.
하지만 결국 그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진즉 이렇게 될지 알고 그렇게 하지 말자고 했는데 나 같은 개인이 무슨 힘이 있겠나. 공과 사의 벽을 터버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듯 무너져버렸다. 이제 더 이상 공도 없고 사도 없다. 카카오톡만 있다. 카카오톡은 사적인 영역에서 친구,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메신저였는데 이제는 공적인 영역에서도 쓰임을 받는다. 친구와 대화 나누는 톡방보다 일로 만들어진 단톡방이 더 많다. 급기야 내가 친구들에게 공개하고 싶은 내 프로필 사진을 아무나에게 다 공개해야 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내가 친구 등록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날 친구 등록하면 내 모든 것이 상대방에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이것의 심각한 문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나마 멀티 프로필이 등장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 전화번호 저장 잘 안 한다. 나는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게 타인을 향한 존중이다. 내가 업무적으로 만난 사람들이랑 무슨 사적인 관계를 갖겠다고 그들의 폰 번호를 저장하고 카톡 친구를 추가할까. 실제로 소셜미디어가 자신을 옥죄는 경우를 많이 봤다. 코로나 상황에서 동선을 숨겼는데 소셜미디어에서 적발되었다던가, 자신이 주말에 방문한 카페 사진을 올렸는데 직장 상사가 사진을 보고 언급하는 소름 돋치는 경우가 그 예라고 하겠다. 특히, 여성이라면 정말 이런 상황에서 끔찍하다는 생각까지 들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상대방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고, 카톡도 추가하지 않는다. 친구와 가족이 아니면 절대 그들의 사생활에 관심 가져주지 않는다. 문자로 대화한다. 문자로 대화할 때 일부러 상대방의 이름을 한 번 쳐서 보낸다. 그러면 다음에 그 사람이랑 또 문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 설령 생긴다고 하더라도 이름을 검색하면 문자 기록이 남아 있다. 그게 나의 타인을 존중해주는 방식이다. 관심받고 싶은 사람은 내 방식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관심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문제는 그런 사람은 말을 안 해서 없다고 생각될 뿐이다.
나 역시 별로 관심받고 싶지 않다. 카카오톡 멀티 프로필 이용방법을 바꿨다. 친구로 등록된 사람을 멀티 프로필로 해놓고 내가 친구 등록 안 한 모든 사람들은 내 메인 프로필을 보게 된다. 대다수는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사진을 해놓거나 가끔 가족들 사진을 해놓는다. 하지만 진짜 내 동선, 내가 공개하고 싶은, 보여주고 싶은 사진들은 멀티 프로필로 해서 가족과 친구, 지인들만 볼 수 있다. 이런 궁여지책이 무언가 싶다. 그냥 카카오톡 자체를 안 쓰고 싶다. 사적인 대화용이 아니라면 공적인 영역에서는 카카오톡이 금지되었으면 좋겠다. 밤에도 주말에도 쉴 새 없이 카톡이 울려댄다. 평일보다 빈도수는 줄어든다고 하지만 여전히 카톡은 사적인 영역인지라 톡이 오면 가족이나 친구에게 온 것이라고 생각되어 볼 수밖에 없다. 업무 일이라고 해도 나랑 관련 없는 일이 단톡방에 와 있으면 허무하기도 하다. 그래서 아예 단톡방은 종류별로 알림을 꺼놓기도 한다. 아내랑은 비트윈을 쓴다. 아내에게 오는 메시지는 별도로 반응한다. 업무는 텔레그램으로 하면 좋겠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명확히 분리하고 싶다. 핵인싸이거나 여전히 예전 사고방식에 빠진 사람들은 공적인 영역에서도 친하게 지내야지 업무 효율을 높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업무 하러 출근해서 업무 시간의 절반은 수다 떠느라 보내는 사람을 정말 많이 봤다. 제발 일할때 말 좀 안걸었으면 좋겠다. 회의 시간에 아이스브레이킹 안했으면 좋겠다. 업무에 집중하고 빨리 마무리 했으면 좋겠다. 내 MBTI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일할 때 ENTJ다. 하지만 회사에서 내가 E인 것은 사람이랑 친해서가 아니라 쓸데없는 말 하는 사람한테 하지말라고 할 용기가 있는 E다. 우리가 만약 공적인 영역에서 한마디 대화도 없이 오직 주어진 업무만 할 수 있다면 하루 업무 시간은 4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군대 같은 곳은 전우애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말이 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난 이렇게 대답한다. 전우가 되려면 전장에서 총 맞은 나를 둘러어고 나올 수 있어야 하고, 어떠한 작전계획을 수립하든 전우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작전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설령 내가 전사하더라도 내 가족들의 삶이 이어나갈 수 있도록 관심 가져줄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그러려면 85kg인 나를 들 수 있도록 전투체력단련과 TCCC 훈련을 해야 하고, 장교라면 교범과 전사를 보면서 작전술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하며, 평소에 관리의 영역에서의 사적인 사항까지만 알면 그만이라고. 내 프사를 뒤지면서 주말에 내가 어디 갔는지 알아내는 게 전우애는 아니다.
우리는 가끔 착각한다. 마치 공적인 영역에서 친해야 업무 효율이 올라간다고. 그런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직장에서 친해지는 사람 중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일 끝나고 얘기하면 된다. 그리고 가정이 있고 아이들이 있는 아빠는 빨리 집에 가서 가족들이랑 놀고 싶지 직장에서 수다 떠느라 시간 뺏기고 싶지 않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섞어 버렸다. 설탕과 소금을 섞었다. 밀가루와 쌀가루를 섞었다. 이걸 어떻게 다시 분리하나. 이제 안된다. 우리는 이제 사적인 영역을 잃어버린 세상에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