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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물 Aug 10. 2021

「수목원에서」(윤종신)

주절주절 음악 03

「수목원에서」(윤종신) : https://youtu.be/svKau0ZIPAk

그늘 아래에서 느끼는 쾌청함


최근 가수 윤종신의 노래를 그야말로 틈만 나면 듣고 있다. 우연찮게 본 라이브 영상에 유튜브 알고리즘이 잠식당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본디 나는 그의 노래하는 방식을 좋아했더랬다. 과잉되지 않은 담백한 목소리로, 공들이지 않고 뚝 뚝 떼어온 범상한 노랫말을 읊는. 물론 달에 한 번 노래를 내면서, 온갖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만큼 그의 노래를 간단히 정의내릴 순 없겠지만 말이다.


「수목원에서」는 알고리즘 덕분에 알게 되었다. 변하지 않은 곳에서 변한 것을 추억하는, 가사나 멜로디나 아련하고 콧바람을 덥게 하는 그런 노래인데 거참, 기묘하게도 들을 때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시원함, 상쾌함 따위의 것이었다. 햇볕이 따가운 여름날에 나무 그늘 아래에 해먹을 걸고 매달려 흔들리는, 그런 한가하고 쾌청한 그림이 떠올라서 그 괴리에 절로 갸우뚱하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후회도, 사념도, 미련도 없이 지나간 인연을 떠올리며 행복을 빌어줄 수 있다는 것은 더위를 잊은 채 두터운 그늘 아래 누워있는 것만큼 편안한 마음일 것이다. 관계가 깨지면서 남긴 뾰족한 감정도, 까끌한 기억들도 전부 몽돌 해변의 자갈처럼 둥글둥글하게 깎여서 이젠 그 유려한 곡면이 마냥 아름답게만 보일 만큼. 그리고 어쩌면, 그만큼 한가할 때나 할 수 있는 생각일지도. 


이렇게 보니 「수목원에서」를 계속 듣게 되는 것에는 일종의 부러움이 깔려 있는 것만 같다. 같은 계절에 있음에도 그만큼 시원하지도, 한가하지도, 그리고 편안하지도 못한 나는 혼자 수목원을 거닐며 그 기분이 '아주 그만'이라고 하는 그를 질시하고 있는가 싶다. 이 어찌나 속 좁은 사람인지.


그대 인생 푸른 날만 있도록


우울할 때마다 나는 악연들을 떠올린다. 내가 어찌 할 수 없었던 악연도 있다. 그러니까, 태생부터가 이 사람과는 맞는 구석이 없을 것임을 직감했으며 짧은 인연 동안 그 직감을 확인하게 만든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는 건 길바닥에 무심코 침을 배앝는 일과 같다. 어쩌다가 그 침 자국이 눈에 띄어서 어? 내가 침을 왜 뱉었지. 하면서도 두 걸음만 가면 이내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내가 손수 만든 악연들은, 그래, 솔직해지자면 우울할 때만 그네들을 떠올리는 것도 아니다. 잠시라도 혼자 있게 되면 나는 그들을 떠올린다. 좋은 인연이 될 수 있었고, 실제로 잠시나마 좋은 인연이었던, 그리고 그 관계의 장래성을 내 손으로  잘라버린 사람들을. 되짚어 올라가 봐도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 도무지 모를 때도 있다. 때론 특정한 장면이 괴로울 정도로 생생하게 떠오르는 때도 있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런 생각이 헛되다는 것은 일찍이 깨달아서 더는 하지 않는다.


이따금 두려움에 삼켜질 때가 있다. 아직 내 옆에 있는 소중하고 고마운 인연도 언젠가는 내 손으로 전부 망쳐버리고 말 것 같아서. 악몽에 깨어난 어린 아이처럼 나는 그 근거 없는 망상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 한다. 오늘따라 심드렁하게 날 대하는 편의점 직원을 보며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무슨 혐오 받을 짓거리를 했지, 고민하는 나를 보며 과거의 망령이, 그리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위축시키고 있음을 종종 느낀다.


자기 혐오도, 자기 학대도 참으로 위선적이고 손쉬운 감정이자 행위라는 것을 안다. 그 아래에 담겨 있는 건 그 잠시나마 편해지고 싶은 나의 욕망이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과거의 나를 혐오하고 미워할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머리털을 쥐어 뜯으며 때로는 하던 일을 멈추고 지나간 인연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나의 아쉬움과 안타까움과 후회를 못 이겨 비열한 사과와 참회의 말을 그네들에게 건넬지도 모르는 일이니. 


「수목원에서」의 인연을 추억하는 방식이 시원하고도 쾌청하게 들릴지언정, 결코 내가 그 정서에 공감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지나간 인연이 될 거라고, 감히 나는 그렇게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냥, 모쪼록 순조롭게 아무 것도 아닌 채로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 더는 누군가의 악연이 되지 않고, 더는 누구에게 유해한 사람이 되지 않고. 요즘의 바람은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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