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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의 노블 테라피 Feb 15. 2024

"내 말은, 이멜다, 일이 그렇게 된다는 거야."

[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_살면 살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놀랍고 두렵다. 삶이라는 것은, 인생이라는 것은, 산다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선택의 결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실은 우연과 운명의 합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수록 경외감에 휩싸인다. 우리를 이루는 그 수많은 순간들에 우연과 운명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이 있을까. 가혹한 우연과 짖궂은 운명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우리는 자주 슬픔 속에 놓이게 된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우리는 "슬픔 속에서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슬픔 속에서 위로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굳이 주위를 둘러볼 것도 없다. 거울만 들여다보아도 알게 될 일이다. 슬픔 속에서 위로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다. 거대한 우연과 운명이 공동으로 협력한 결과 격변의 역사가 휘몰아치는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그럼에도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수수께끼 같은 희망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언제, 어디에나 있다. 


_언제, 어디에나 있다. 언제, 어디에나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살아갈 위로가 된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소설은 있었고, 있으며, 있을지도 모르겠다.


_"그 두 노인네가 그렇게 염려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와 내가 아일랜드에 오는 일은 없었을 거야. 그분들이 그런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네 아버지와 나는 절대로 만나지 못했을 거고. 그랬다면 너나 나나 지금 여기 킬네이에 있지 않겠지.(...)내 말은, 이멜다, 일이 그렇게 된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일은 우연히 일어난단다."(p.291)


"(...)라니건 씨의 사무실에서 내가 진실을 마주하던 순간, 그 애가 비밀 서랍을 열어본 순간, 그가 방문 앞에 서서 어머니의 죽음을 목도하던 순간, 군인들의 학살 이후 킬네니가 그랬듯 그 결정적인 순간들 이후 우리는 모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난도질당한 삶들, 그림자의 피조물들.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운명의 꼭두각시들. 우리는 유령이 되었다."(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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