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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의 노블 테라피 May 23. 2024

'우리'라는 "빛과 물질"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_드물지만 그런 책이 있다. 처음 몇 페이지만 읽었을 뿐인데도, 내가 이 책과 사랑(?)에 빠져들겠구나, 하는 직감이 드는 책 말이다. '이 책을 사랑하겠구나'라고 쓰지 않고 '이 책과 사랑에 빠져들겠구나'라고 한 것은 나만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이 나를 부르며 끌어당기고, 나 역시  기꺼이 빨려들어가는 그것은, 분명 책과 내가 나누는 상호간의 사랑임을 확신한다. 어쨌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그랬다.


_수록된 첫 번째 단편부터 그랬다. 한 문장씩 읽어내려가면서 몇 번이나 멈칫했는지 모른다. 무언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는데, 이상한 건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또렷해지는 것이다. 명확해진다거나 분명해지다기보다는 생생해진다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 생각과 내 마음과 내 감정만은 생생해지는 느낌이었다. 소설이 이야기하듯,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은 모호하고 불명확하고 예측할 수 없고, 또 그게 당연하지만 말이다.


엷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은 감흥에 사로잡힌 상태로 마지막 책장을 덮은 뒤 곧바로 첫 페이지를 다시 폈다. 꼼꼼이 다시 읽고 옮겨 적었다. 이미 그어 있는 밑줄 위에 또 다른 밑줄이 겹쳐졌고, 새로운 밑줄이 생겨났고, 문장들을 옮겨 적느라 손가락이 아팠다. 읽고 또 읽고, 멈칫하고 또 멈칫하고, 얼어붙었고 또 얼어붙었다. 책이 나에게 기꺼이 내어주고, 내가 책에서 간절히 구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바로 이런 시간들일 것이다. 기쁘지만도 않고 슬프지만도 않고 희망적이지만도 않고 비관적이지만도 않지만, 그래도 내 생각에는, 슬픔에 더 가까울 듯한 시간들.


나에 관해 알고 싶어졌다. 나를 이루는 "빛과 물질에 관"해 그동안 무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직접 겪어오면서도, 그게 무엇이었는지 몰랐던 것들-정확하게는 깊이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던 것들-이 과거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또 현재의 나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 중인지, 앞으로의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지에 관해 알고 싶어졌다.


동시에 다른 것도 알고 싶었다. "자기를 뛰어넘는 수준의 사고"와 "절대 이해하지 못할 수준"의 무언가에 관해서도. 분명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만을 깨닫게 될 테지만, 그럼에도 그 "사고"라는 것의 뉘앙스라도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싶었다.


_"모든 물리학자에게, 자기를 뛰어넘는 수준의 사고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때가 와요. 자기가 절대 이해하지 못할 수준, 하고 그는 말했다.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들도, 보어조차도, 그 지점에 도달했지요."(p.94)


위 인용 문장에서 "물리학자"에 '인간'을, "사고"에 '운명이나 우연'을 바꿔놓고 다시 읽어보았다. 그러고 나니 이것 하나만은 명백하고 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너무나 강한 확신이 든 나머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깨달았다.  


"모든 물리학자"에게 "사고"라는 것이 그러하듯, 모든 인간에게도 "자기를 뛰어넘는 수준"의, "절대 이해하지 못할 수준"의 무언가가 엄존한다 것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때"는 어쩌면 그리 늦게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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