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립하시오 당신도!"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_"기립하시오 당신도!"(p.133)

요즘이야말로 이 문구가 절실한 때가 아닌가 싶다. 정신 나간 미친 XX가 대한민국을 하루아침에 혼돈의 도가니로 빠트린 요즘 같은 시국에 말이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더니(이 XX한텐 '신념'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아깝다), 하다 하다 이렇게까지 제멋대로 날뛸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이 XX니까 이런 미친 짓을 벌일 생각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비상계엄령이라니. 뇌 구조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기에 그럴 수 있는지 궁금증이 일 정도다. 곱씹을수록 어이없고 분통이 터지지만, 아무튼 2024년 12월 3일 22시 23분 무렵 나는 이 책을 아주 흥미롭게 읽은 참이었다. '흥미'라는 표현에는 다양한 감정이 들어 있다. 재미있다, 기발하다, 트렌디하다, 가벼운 듯하지만 실은 굉장히 신랄하고 진중하다, 놀랍다, 감탄스럽다, 부럽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내고 이런 식으로 풀어낼 생각을 했을까. 정말 부럽다.....몇 분 뒤 동생으로부터 방금 뜬 뉴스 속보를 봤냐는 톡을 받았고, 에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TV를 틀었고, 눈 뜨고도 믿기지 않는 영상이 진짜 현실이라는 인식을 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고, 입 밖으로 욕설이 거침없이 흘러나왔고, 그때 이 문구가 떠올랐다.


"기립하시오! 기립하시오 당신도! 이것이 인터내셔널이오!"(p.135)


_이 책의 표제작인 단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 담긴 이 문구는 작금의 현실과는 조금 다른 상황에 쓰이긴 했다. 아니다, 큰 틀에서는 같은 맥락이다. 불의와 횡포와 억압에 맞서야 한다는 관점으로 보면 2차 산업혁명 초기 노동자들의 현실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니까. 아무튼 진정하고, 책 이야기로 돌아가면,


9편의 소설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쭙잖은 개인적 관점으로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이삼십 대 청춘의 고민과 방황, 불평등, 불공평, 악화되는 계층간의 격차, 환경문제, 입시 위주의 교육, 현대인의 정신건강 등. 지금껏 문제였고 앞으로도 문제일 것이고 어쩌면 거의 백 퍼센트의 확률로 인류 멸망의 날까지 숙제로 남을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가 무겁지 않다. 오히려 통통 튀고 명랑하기까지 하다.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러다가 몇몇 단어와 문장과 문단을 만나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다시 읽으면서 한숨이 나온다. 의심의 여지없는 현실이고, 그 현실 속에서 막막할 뿐이어서. 얼굴이 붉어진다. 막막한 현실에서 그저 한숨만 쉴 뿐인 용기 없고 무력한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소문난 맛집의 음식은 과연 맛있다. 맛집 음식을 먹으며 우리는 말하곤 한다. 역시 사람들 입맛은 똑같다니까. 괜히 소문난 게 아니야. 사람들의 읽는 눈맛(?)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다. 독자들의 입을 통해 소문난 책은 과연 좋다. 이 책 역시 그렇다.


_"사람들은 나이와 직업과 외모를 초월한 사랑이 더 진실하다고 여기면서도 정말 그것들을 초월하려고 시도하면 자격을 물었다."(p.76)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나?"(p.133)


"있는 꿈도 없는 듯 주머니에 쑤셔넣고 문제집을 푸는 게 과거의 입시라면, 없는 꿈도 있는 듯 만들어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게 지금의 입시였다."(p.152)


"사람들은 어떤 환자들에게는 연민 이전에 경계심을 채비한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나를 정신병자라고 부를 준비가 되어 있다."(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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