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관하여

[어떤 날들], 앤드루 포터

_소설을 읽을 때면 가족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부부, 부모, 자식, 부모와 자식, 형제...이런 것들은 무엇일까. 대체 가족이 무엇이기에 누군가의 삶을 좌지우지 휘두를 수 있는 걸까. 다시 말해 가족은 답일까 문제일까. 가족이 과연 답이 될 수 있을까, 문제가 아니라. 어디선가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가족은 답이 아니라 문제다.


공감했다. '공감'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깊이 동감했다. 생각해보면 가족은 답보다는 문제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문제는 대개 쉬이 감당할 수 있거나 능히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듯 평생 등에 짊어져야 한다. 가족이니까, 가족이므로 어쩔 수 없이 죽을 때까지 가슴에 품고 살아야만 한다. 상투적이고 진부한 표현이지만 '십자가'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벗어버리고 내려놓고 내팽개치고 싶은 '십자가' 같은, 그러니까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말했듯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가족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떤 날들>에도 가족이 등장한다. 부부와 두 자녀. 당연하게도 불완전한 부부와 역시 불완전한 자녀. 불완전하기에 그들은 자주 갈등에 빠진다. 이 길로 가야 할지 저 길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가족 간의 대화는 점점 사라지고 서로를 향한 사랑과 믿음은 옅어지고 의심과 오해가 짙어진다. 시간을 돌이킬 수 없기에 마지못해 앞으로 한발 내밀지만 그 발걸음이 무엇을 초래할지 몰라 불안하고 두려워한다. 대체로 선하고 유약하고 모질지 못한 이들. 어리석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는 사람들. 운명은, 당연하게도, 제 할일을 한다. 장난을 친다. 그들 모두의 삶을 뒤흔들 정도로 고약한 장난을 치고는 팔짱을 낀 채 지켜본다. 그 결과 그들에게 가족은 더 큰 문제가 된다. 답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기도 하지만 잠깐일 뿐이다.


결국 그들은 어렴풋이 깨닫는다. 가족은 문제라고. 다정한 이들이기에 딱 잘라 '가족은 문제'라고 단정하진 못하는 듯 보인다. 다만 완곡어법을 사용해 고백하는 것 같다. 가족은 답이라기보다는 문제에 가깝다고. 가족은 나에게 문제이지만 나 역시 다른 가족에겐 문제라고. 알 수 없고, 어쩔 수 없는 문제가 가족이라고. "도대체 어디로 가는"(p.202) 건지, "어떻게 이렇게 된"(p.210) 건지 알 수 없는 문제가 가족이라고.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겪어보지 않고는 정말 모르는"(p.255) 것이 가족이라고. "그래서 결국 내게는 무엇이 남았나?"(p.257)하고 물었을 때 단번에 "가족"이라고 답할 수 없게 하는 게 가족이라고. 늘 나중에야 깨닫고 "자신의 잃어버린 일부를"(p.411) 끝내 찾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냥 없는 채로 살아가는 법을 알아내"(p.411)도록 만드는 게 가족이라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 역시 깨닫는다. 다시 한번. 새삼스럽게도. 가족이란 그런 존재라고.


_"그리고 이제 모두 함께 모여 앉아 식사를 한다. 네 명 모두, 한가족으로. 그로부터 일 년 후, 그들은 서로 거의 말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서로의 삶에 대해 아주 작은 부분들조차도 모르고 지내게 될 것이다. 심지어 클로이가 어디에서 사는지도 모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 함께 있다. 지금은 한방에서 그들이 전에 천 번도 더 앉았던 식탁에 함께 둘러앉아 있다.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침묵 속에서. 이 순간, 그들은 함께 있다. 가족이라면 으레 한다고 믿는 것, 가족이라면 그래야 한다고 배운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면서."(p.538)


"(...)이미 저질러진 피해에 대해서나 돌이킬 수 없게 된 일에 대해서나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그 모든 것을 생각할 때마다 알게 되듯이, 지금 그녀는 안다.(...)머지않아 집에 돌아갈 수 있는 수단이 생기더라도, 돌아가는 길은 단지 너무 먼 여정, 너무 먼 거리라는 사실을."(p.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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