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묻고 소설이 답하다.

[여름의 빌라], 백수린

_이게 사는 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이런 푸념 섞인 한탄을 늘어놓을 때가 있다.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보통은 그냥 혼자 속으로 하는 소리다. 딱히 살아가는 일에 의미나 목적 같은 것을 부여하지 않는데도, 심지어 그런 것을 인식조차 하지 않고 지내는데도. 내 경우에는 나이가 들면서 더 그런 것 같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삶에는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다는 식의 닳고 닳은 뜻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없으면 어때서? 꼭 의미나 목적이 있어야만 삶인가? 그런 거 없어도 살 수 있지 않아? 그런 거 모르고도 살고 있잖아. 그냥 살아지니까 사는 거고 살아지면 사는 거지. 그런 거 없이 산다 한들 무슨 상관이야? 그런 거 생각하기 시작하면 골치 아파. 안 그래도 사느라 피곤한데. 그렇지 않아?


혼자 하는 넋두리이니 그렇지 않냐고 물어볼 사람은 없다. 설사 물어볼 사람이 있다 한들, 나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한번 대화를 나눠 보자, 하고 진지하게 상대주진 않을 것 같다. 아니다. 누군가 정색을 하고 그렇게 나온다면 너무 부담스럽다. 그러니 소설책을 펼 수밖에. 소설을 사는 인물들에게 물어볼 수밖에. 내겐 소설은 언제나 '믿는 구석'이고 '비빌 언덕'이니까.


나는 소설에게 묻는다. 그렇지 않아? 소설은 답한다. 모르겠어. 나도 도통 모르겠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아보는 중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다야.


_"그런 까닭에 그 긴 시간 동안 쌓인 침묵의 벽을 깨고 당신이 나를 만나자고 했을 때는 당신에게도 심경의 변화가 일어날 만한 사정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p.47)


"내가 조금만 주의 깊고 다정한 사람이었다면 당신이 운 이유를 그때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p.55)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한 정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는 평생 이렇게, 나가지도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내가 그 장면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 것은 아주 먼 훗날의 일이고, 그때 나는 창밖으로 떨어져내리는 아름다운 눈송이르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p.104)


"아무짝에 쓸모없는 각설탕 탑을 쌓는 일에 아이처럼 열중하는 늙은 남자의 정수리 위로 부드러운 햇살이 어른거리는 걸 보고 있노라면 할머니는 삶에 대한 갈망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또다시 차오르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인생에 대해 무언가를 기대한다니.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그렇게 평생 동안 배신을 당해놓고도."(p.199)


"선주는 "너도 소중하지만 새 친구들도 똑같이 소중해"라고 나에게 말하곤 했는데, 나는 '똑같이' 소중한 것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우리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음을 받아들이느라 봄을 온통 허비했다."(p.255)


_이번엔 소설이 내게 말한다. 나는 그냥, 이렇게, 살고 있어. 그런 소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는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신음 같은 한숨을 내쉬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럼에도, 살아볼 수밖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가족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