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 존 윌리엄스

_비록 하잘것없는 독서감상문(이라고 썼지만 사실 독서 일기에 가까운)이지만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일은 나에겐 얼마간 품이 드는 작업이다. 우선 책을 처음부터 다시 훑어보며 내용을 복기한다. 독서노트에 발췌 필사한 문장들을 곱씹으며 책을 읽는 동안 들었던 생각이나 느낌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고민한다. 무엇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분명 이런저런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술술 써질 줄 알았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어렵다. 언제나 시작이 어렵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다시 책을 훑고 독서노트를 살피는 동안 시간은 꽤 흘러 간다. 아직 첫 문장도 시작 못했는데. 이쯤 되면 이런 생각들이 밀려든다. 독서감상문 하나도 못 쓰면서 무슨 소설을 쓰겠다고, 한심하다 한심해. 어차피 읽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대충 쓰지, 뭐. 그냥 쓰지 말자, 꼭 써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마음이 심란하다. 좌절감, 우울감, 무력감, 수치심...그리고 부질없음. 언제나 결론은 부질없음. 이게 뭐라고. 내가 뭐라고. 딸아이를 생각하면, 그애와 나와 내 가족의 삶을 생각하면, 부질없는 짓이지. 부질없다, 다 부질없어. 컴퓨터를 끈다.


다음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오늘은 뭐라도 써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은 나를. 어찌어찌 첫 문장을 쓰고 나면 생각과 감정이 뒤따라 오고, 그것을 적는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 비슷할 때도 있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때도 있다. 아주 가끔 마음에 들 때도 있지만 대개는 얼렁뚱땅 엉망인 글 나부랭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힘이 난다. 그날 하루를 버텨낼 정도의 힘. 딱 그만큼의 힘이 난다. 보람이랄까 성취감이랄까. 아무튼 독서감상문, 아니 '뭐라도 쓰기'는 나에게 그런 의미다. 9년 전 어느 여름날 이후 완전히 변해버린 내 삶을 버틸 수 있게 해준 힘은 내가 쓴 글 나부랭이, 아니 쓰는 행위 자체에서 비롯됐으리라 믿는다.


_"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p.385)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p.387)


이것이 뜬금없이 독서감상문 이야기를 꺼낸 이유다. 죽음의 문턱에서 스토너가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 나에게도 물어보았다. 넌 무엇을 기대했니? 너는 네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했니?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조금 편안해짐을 느꼈다. 아슬아슬 손에 든 채 어찌할 바 모르던 무언가를 바닥에 가만히 내려놓은 것처럼.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설마, 너, 뭐 대단한 거라도 기대했던 거야? 네 삶은 안락하기만 해야 한다고 기대한 거야? 네가 뭐라고, 네가 뭔데.


무언가를 잃었으면서도 잃은 줄 모르고,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면서도 원하고, 이루고, 실패하고, 비겁하고, 좌절하고, 상실하고, 낙담하고, 속절없이 견디고 버텨낸, 스토너의 삶은 내 삶과 어딘가 닮은 듯하다. 그리고 그런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 스토너가 던진 질문. 모든 것을 부질없게도 유의미하게도 만드는 질문. "넌 무엇을 기대했나?" 이 물음표 앞에서 어쩐지 숙연해진 마음으로 내가 떠올린 것은 지난 9년 동안 뭐라도 쓰기 위해 애썼던 나다. 강박적으로 계속 읽고 쓰고, 거기에서 하루를 버틸 만큼의 보람인지 성취감인지 아무튼 힘을 얻어내려 발버둥쳤던 내가 떠올랐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읽고 쓰는 삶을 기대하는 건 아니다. 읽고 쓰는 삶이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읽고 쓸 수 없어도, 읽고 쓰는 것에 염증이 나서 그 근처에 얼씬도 하기 싫어진다고 해도, 아니, 그게 뭐가 중요한가. 내 모든 것을 다 포기하더라도, 나는 딸아이가 건강해져서 세상에서 말하는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_넌 무엇을 기대했나, 하는 물음에 나는 읽고 썼던, 읽고 쓰고 있는, 계속 읽고 쓰자고 마음을 다잡는, 내가 떠오른다. 기왕이면 내려놓고. 이왕이면 내려놓고. 이상하게도 아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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