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_한바탕 수다를 늘어놓고 싶었다. 상대는 이왕이면 습관처럼 소설을 즐기고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맞장구쳐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소설 동호인이라고나 할까. 이것 봐, 내 말이 맞지? 맞네, 맞아. 정말이지 놀랍지 않아? 역시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세상에, 정말 대단하다! 어쩜 이럴 수 있지? 딱 봐도 수준 높아 보이지 않는, 대명사와 감탄사가 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화의 내용은 대략 이런 뜻일 것이다. 소설은 이야기다. 이 말은 '사람은 죽는다'라는 명제처럼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야기의 힘은 강력하다. 그러니 소설의 힘은 또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이야기와 소설을 좋아하는 우리는 이야기와 소설의 힘을 알아서 다행이다.
그런데 만약, 둘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저기요, 대체 이야기와 소설이 가진 힘이 뭐에요? 그렇게 대단하다면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거죠? 얼마나 놀랍기에 그토록 찬양하는 겁니까?
수다가 멈춘다. 둘은 눈에 띄게 당황한다. 어찌할 바 몰라 눈짓과 턱짓만 주고받을 뿐이다. 네가 말해. 네가 대답해. 어색한 침묵이 길어지자 소설 동호인이 내 무릎을 툭툭 치며 속삭인다. 네가 대답해. 먼저 말을 꺼낸 건 너잖아. 소설은 이야기라고. 이야기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고. 그러니까 네가 말해야지.
_그때 내가 대답 대신 슬며시 내밀고 싶은 것이 이 책이다. 읽기만 하면 된다. '토마스'를 따라 최신식(?) 자동차를 타고, '에우제비우'를 찾아온 노부인의 사연을 이야깃거리 삼아, 침팬지 '오도'와 함께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아 가는 여정에 동행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답을 구할 수 있다. 이야기에 의해,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로 인해, 알게 된다. "바다에 에워싸인 섬처럼, 이야기에 둘러싸이고 이야기들이 떠받치고"(p.182) 있는 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지금의 우리 역시 이야기로 이루어진 존재임을. 그러므로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느끼게 된다. 이야기를 읽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물을 마시면 목마름이 해소되고 음식을 먹으면 배가 차는 것처럼.
_읽은 소설이 너무 좋을 때면 나는 누구든지 붙잡고 고백하고 싶어진다. 사랑합니다, 소설. 흘러넘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막 외치고도 싶다. 물론 작은 목소리로 수줍게. "소설 만세"
이번에는 이야기 만세다. 정말이지 사랑합니다, 이야기.
정말이지 쓰고도 싶습니다. 이야기를. 소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