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이주혜
_3년 전 나는 무모한 일을 벌인 적이 있다. 제대로 된 글이라고는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내가 경장편소설 공모전에 도전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실제로 응모를 한 것이다. 아이가 등교한 평일 아침이면 출근이라도 한 양 컴퓨터에 앉았다. 써지든 안 써지든 아이가 하교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썼다. 쓰려고 애썼다. 그렇게 6개월 정도가 흐른 뒤 원고지 719매 분량의 원고가 완성(?)되어 응모했다. 결과는 낙방. 당연하고 지당하고 마땅한 결말이었다. 가끔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어떻게 그걸 할 생각을 했어? 너처럼 겁 많고 대담하지 못한 애가 어떻게? 한참 생각하던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말한다. 그냥. 그냥 그러고 싶었어. 곧바로 이어지는 다음 질문. 후회해? 주저 없이 답한다. 아니. 정말 후회 안 해? 나는 고개까지 끄덕여가며 자신 있게 말한다. 응, 후회 안 해. 절대로. 이건 확신이다. 지금껏 살아오면 내가 한 일 중 가장 확신하는 일이다.
_"1년 동안 쓴 일기에 등장하는 나는 내가 아니더라고요.(...)분명 사실만을 기록했고 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게 썼지만 1년 후 그 기록을 읽는 나와 그 기록 속을 살아가는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어요.(...)
당신의 삶을 써보세요. 쓰고 만나면 비로소 헤어질 수 있습니다.
(...)무엇과 헤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요?
내가 기록한 나와. 내가 기록 속에 가두어놓은 나와. 여전히 과거의 기억 속에서 해메는 나와.
(...)헤어지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기록하세요. 어떤 수치심도 글로 옮기면 견딜 만해집니다."(p.22)
_이 소설을 읽으면서 3년 전의 내가 자꾸 떠올랐다. 그냥 쓰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무모한 도전을 시작해 매일 끙끙댔던 내가. 경장편소설 공모전에 응모했지만, 사실 그때 내가 쓴 건 일기에 가까웠다. 나와 딸아이가 함께 일기를 썼다면 아마도 (소설이라고 이름 붙이기에 가당찮은) 그 당시 원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불행을 속절없이 통과하고 있던, 견디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으므로 그저 버티고 또 버텼던, 나와 딸아이의 일기. 그리고 이 또한 내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는, 도무지 잘 되지 않는 '받아들임'이라는 것을 해보려 안간힘을 쓰는 중인 나와 딸아이의 일기. 앞으로도 고단하리라 예상되는 '받아들임'의 여정을 함께할 나와 딸아이의 일기. 그것을 나는 썼고 만났다. 그래서 "내가 기록한 나와, 내가 기록 속에 가두어놓은 나와, 여전히 과거의 기억 속에서 헤매는 나와" "비로소 헤어질 수 있"었냐고? 아니, 그러지 못했다. 다만 그런 나를 조금 더 잘 견딜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세상에는 아무리 쓰고 또 쓴다 한들 헤어지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아포리즘이 통하지 않는 일이 있다. 아니다. 죽으면, 죽음을 통하면 결국 "이 또한 지나"가게 되므로 맞는 말이다. 역시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다. 하지만 죽고 나서야 지나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튼,
3년 전 무모하게 쓰고 또 썼던 나는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살아갈 수 있게 했다. '지금의 나' 역시 마음에 들진 않지만 쓰기 전의 나보다는 훨씬 마음에 든다. 헤어지지 못하면 어때, 그러면 그런대로 사는 거야, 하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도 있게 된 내가 조금은 기특하다. 그리고 또 확신한다. 지금도 무모하게 쓰고 있는 내가, 쓰려고 애쓰는 내가 앞으로의 나를 살게 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