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파이 이야기], 얀 마텔

_이 소설의 백미는 마지막 3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태평양 한가운데서 227일 동안, 그것도 뱅골 호랑이와 함께 버틴 인도 소년의 표류기는 더할 나위 없이 생생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끝내 적응에 이르러 살아내고야마는 근성. 생존을 향한 처절한 갈망.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은 정말이지 압권이었다.


그렇게 1부와 2부가 끝나고, 3부 시작. 376페이지에서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394페이지에 이르러서는 한동안 얼떨떨했다. 이게 뭐지? 이야기를 곰곰 복기하면서 중간에 놓친 단서가 있진 않은지 첫 페이지부터 다시 훑어보았다. 한참 허둥지둥하다가 나를 당황케한 394페이지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다. '피신 몰리토 파텔', 그러니까 '파이'가 질문하는 부분을.


_"그럼 말해보세요. 어느 이야기가 사실이든 여러분으로선 상관없고, 또 어느 이야기가 사실인지 증명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묻는데요,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어느 쪽이 더 나은가요?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요, 동물이 안나오는 이야기요?"(p.394)


나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게 이토록 고민할 일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고민이 됐다.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들었지?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가 더 낫지 않나. 호랑이와 함께한, 호랑이로 인한, 호랑이를 통한 생존 이야기는 정말 그럴듯하고 생생했어. 정말이지 '리처드 파커'(호랑이)가 아니었다면 '파이'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거야. 아마 나였더라도 그랬을 것 같아. 그런데 난데없이 어머니와 요리사와 선원이라니? 이 이야기도 있을 법하지만 너무 갑작스럽잖아. 잔혹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2부까지 나 역시 '리처드 파커'를 내내 의식하고 또 의지하며 태평양을 표류해왔는데, 갑자기? 안 돼, 의리(?)가 있지. 아니야, 가만 있어 봐, 227일을 호랑이와 단 둘이 지낸다고? 그것도 망망대해에서? 말도 안 돼. 하지만 그래도 '리처드 파커'는 포기할 수 없어. '파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리처드 파커' 덕분이야! 그러니까, 나는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가...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순간 깨달았다. 아, 이 소설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였구나.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어느 쪽이 더 나은가요?"(p.394) 이 질문은 이런 의미였다. 당신은 무엇을 믿나요? 당신은 무엇을 믿고 싶나요? 세상의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무엇을 믿게 되었나요? 또 하나 깨달은 것.


"그때 노신사가 말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면, 젊은이는 신을 믿게 될 거요."(p.10)


당신이 무엇을 믿든 간에 그건 바로 신을 믿게 되는 것과 같다는 것. 신이 존재하든 안 하든, 신의 존재를 믿든 안 믿든, 당신의 믿음은 당신에게 있어서 신과 같은 존재가 된는 것. 그래서 믿음은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한편으론 무섭기도 하다는 것. 이 소설과는 상관없지만, 믿음(신념)이 가진 힘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특히 오만하고 광적이며 집단적인 믿음이 가지는 끔찍한 힘을 오래 생각했다. 샛길로 한참 벗어났지만 아무튼,


_소설은 정말 소설가만의 것이 아니었다. 소설가가 생산했지만 그의 손을 떠나 독자가 읽었을 때 비로소 소설이 완성된다는 것. 하나의 소설을 만 명의 독자가 읽었다면 그것은 만 개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 이 얼마나 진부하면서도 놀랍고 신기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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