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되는 걸까?"

[너에게 묻는다], 정용준

생각하기 나름이다. 맞는 말이다.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단 하나의 '생각(흔히들 일컫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엄존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나름'의 '생각’을 떠올릴 여유가 없는 사람들과 팍팍하기 그지없는 삶들은 도처에 있다.

더 싫어하는 말도 있다.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반드시 다른 쪽 문을 열어둔다. 이 말이 진실이라면 신은 아마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이다. 세상 모든 곳의 문을 여닫고 다니느라. 경황이 없는 나머지 실수도 잦다. 너무 늦게 문을 열거나 어떤 문은 닫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영영 열지 않는다. 그나마 이런 실수는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불공평한 처사는 도무지 용납이 안 된다. 어떤 문은 닫는 시늉만 할 뿐이거나 닫았다 하더라도 금방 열어준다. 또 왜 열리는 문은 불투명한데 닫힌 문은 투명할까. 갇힌 사람들은 밖이 빤히 내다보이는 투명한 문을 통해 본다. 자신의 문과는 달리 금방 열리는 문들을, 수월히 빠져나갈 수 있는 문들을, 심지어 한 번도 닫힌 적 없는 열린 문들을, 본다. 그들은 무언가 빼앗겼으면서도 빼앗긴 줄도 모르는 삶에 익숙해진 자들이 짓는 표정을 하고 묻고 싶을지도 모른다. 신이 존재하냐고. 그렇다면 신은 선하냐고. 선하다고들 하는데정말 그런 게 맞느냐고.

나는 빅뱅 우주론과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믿는다. 신은 믿지 않는다. 존재 자체를 불신한다. 종교라는 문화체계와 신앙심이 지닌 힘을 믿게 되었을 뿐 나이가 들수록 불신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럼에도 자주 신을 찾는다. 단지 따져 묻고 탓할 대상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 세계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 버젓이, 무작위적으로, 예측할 수 없이, 벌어지는 곳이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으므로 불신하는 신이라도 소환해 따지고 싶은 것이다.

_그리고 <너에게 묻는다>에서 만났다. 그동안 수없이 묻고 또 물었던, 앞으로도 묻게 될 질문들을. 영영 답을 얻지 못할 게 분명하므로 오직 묻고 또 물을 수밖에 없는 그 질문들을. 만나서 슬펐다. 정말이지 슬펐다.

"그리고 생각해요. 이래도 되는 걸까?"(p.82)

"유희진은 설교 내내 의문을 품었고 나중에는 화가 났다. 신이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한 사람을 깨닫게 하기 위해 그런 무자비한 테스트를 진행한다고?"(p.95)

"고마워할 필요 없어. 만족스럽지 않은데 만족하려고 노력하지 마. 신은 공평하다는 말, 삶에 감사하라는 말, 믿지 마. 감사할 수 없는 삶도 있어.(...)"(p.122)

"어려웠다.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사람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는 것이. 뜨거운 사랑.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지만 피부에 흉터를 남기는 것.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나 사랑하는 자는 성급하고 포악하다. 악수하고 포옹하는 손으로 때리고 밀어내는, 사람과 사랑의 세계. 다들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살아내는지, 슬퍼도 웃는 아이와 기뻐도 우는 어른에게 묻고 싶었다. 모든 것을 참지만 어떤 것도 믿지 못하는, 모든 것을 바라면서 어떤 것도 견디지 못하는, 불가해한 용광로 속으로 손을 집어 넣고 싶었다."(p.346)

_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신이 있든 없든, 신이 선하든 아니든, 사람들은 견디며 살아가고 세상은 돌아간다. 다들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살아내는지 모르면서 다들 어떻게든 견디고 어떻게든 살아내는 사람들이 놀랍고, 또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돌아가는 세상이 놀랍다. 그리고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묻게 된다.

"이래도 되는 걸까?"(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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