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다'라는 말은 '일하다'라는 말을 필요로 한다"

[돌보다, 고치다, 지키다], 희정

_오늘 오전, OO중학교 정문에서 몇 발자국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있는 작은 건물. 나는 쭈뼛대며 다가가 눈높이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 붙은 길다란 미닫이 창문을 통해 안을 살폈다. 보통은 창문 바로 아래 놓인 책상에 앉아 계시는데 어째 오늘은 안 보이셨다. 손차양을 만들어 더 살피니 보안관 할아버지는 구석 벽에 걸린 기다란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다듬고 계셨다. 그 반듯한 모습이 보기 좋아 몰래(?) 훔쳐보고 있는데, 단장이 끝났는지 고개를 돌리다가 나를 발견하신 그가 미닫이 문을 열었다. 예의 그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시고서. 뻘쭘해진 나는 민망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오늘도 또!! 오게 되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훔쳐보다가 걸린 게 부끄러웠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OO이가 뭘 또 놓고 갔나 보죠?“

“네, 이거요. 2교시 끝나고 가지러 온다고 했어요.”

“지난번엔 음악책이더니 오늘은 국어책이네.”

“애가 하도 정신머리가 없어서… 호호호(웃음소리가 작아진다)”

“애들이 다 그렇죠, 뭐. OO이 말고도 그런 애들 많아요. 애들이 학교 다니느라 얼마나 힘들겠어. 너무 뭐라고 하지 마요.”

“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그래요, 그럼 또 봐요.”

“에이, 또 보면 안 돼죠.”

“왜, 또 보면 좋죠. OO이 얼굴 한 번 더 볼 수 있고 얼마나 좋아. 하하하.”

“그런가요. 호호호.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래요, 잘 들어가요.”


나는 매우 잦은 빈도로 등교한 아이의 호출을 받는다. 뭘 집에 두고 왔으니 몇 교시까지 보안관실에 맡겨 놓으라는 거다. 음악책, 사회책, 과학책, 영어학습지, 실내화주머니… 목록은 다양하다. 오늘은 국어책. 으이구, 빼놓은 거 없는지 잘 보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또야 또! 구시렁거리며 아이 책상에서 국어책을 찾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걸음을 재촉하면서 처음으로 보안관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동안 수차례 같은 이유로 이 길을 지나갔음에도 그를 떠올린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보안관실이 너무 어둡고 좁지 않나. 화장실은 안에 있을까. 보안관실 옆에 실외기가 설치된 걸 보니 에어컨은 있나 보네. 왜 그런 것들이 처음으로 궁금하고 걱정되었는지 나는 잘 안다. 어제 희정 작가의 이 책을 읽어서다.


평소와는 다른 기분이 들었다. 평소의 기분에 다른 기분 몇 방울이 섞인 기분이랄까. 적당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얼굴 양쪽에 붙어 있던 가림판을 떼어내어 시야가 넓어진 경주마가 느낄 법한 기분이랄까. 한 단어로 말하자면, 개안(開眼)한-사물 또는 진리에 대하여 깨닫거나 새로운 의식을 가지게 된 기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아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된 기분, 아는 줄 알았는데 아는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된 기분, 아는 줄 알았는데 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기분, 아는 줄 알았는데 단단히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기분. 그러니까 스스로가 부끄러워 화가 나고 죄책감이 드는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알게 된 자신이 좁쌀 한 톨 만큼은 더 나은 사람이 된 듯한 착각에 양 볼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기분. 낯설지 않은 기분이다. 희정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매번 같은 기분을 느낀다. 매번 작가에게 고맙고 매번 작가의 꾸준한 글이 있음에 안도하고 매번 그를 응원한다.


_“학생도 교직원도 아닌 사람들이 학교에 있다는 사실”(p.6)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건 학부모가된 후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에는(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볼 수 없었으니까. 나는 학교 급식 한 번 먹어보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다닌)학교에는 도서관이 없었으니 사서교사가 있다는 것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 알았고, 학교생활 고충상담을 전담하는 위클래스 상담교사가 있다는 건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방과후수업 강사, 돌봄전담사, 학교보안관, 영양사, 조리실무사, 사서교사, 교무실무사, 시설기동보수반 기사, 학교사회복지사, 특수교육실무사... "매일 학교에 가지만 학생도 교사도 아닌"(p.7) 직종만 80여개. 학생도 교사도 아니지만 학교를 일터로 삼아 출근하는 사람들 중 36만 명이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한다. 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이들의 전유물인 줄로만 알았던 나는 또다시 부끄러워 화가 나고 죄책감이 드는 동시에 양 볼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또다시 작가에게 고맙고 작가의 글이 있음에 안도하고 작가를 응원한다. 학교가 일터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알고 싶다면 <돌보다, 고치다, 지키다>를 읽어보시길!


_"배움의 공간이라는 학교는 골조를 올리고 기둥을 세우고 창틀을 끼운 실제의 건축물이다. 건물이 세워진 후에는 칠하고 닦고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안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계획을 세우고 살림을 꾸려야 한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 또한 그릇의 형태를 정하고 내용물을 결정하는 숱한 기획과 계획, 분담과 협력, 수행과 실행이 있어야 가능하다. '배우다'라는 말은 '일하다'라는 말을 필요로 한다. 학교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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