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는 일"

[뒷자리], 희정

_어떤 "사건(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을 받을 만한 뜻밖의 일)"이 일어나거나 세상에 알려진다. 언론이 달려들어 뉴스를 보도하고 기사를 내보낸다. 나는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비판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한다. 세상은 오만가지 사건이 끊이지 않는 곳이므로 또다른 사건이 일어나고 사건은 밀려나고 덮어진다. 나의 안타까움과 슬픔과 분노와 비판 역시 또다른 사건으로 밀려나고 덮어진다. 얼마간의 나날이 흐른 뒤 사건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어 내막이 밝혀질 즈음엔 나는 그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가물가물해진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 간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일은 흔적을 남긴다."(p.9)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에 여전히 남은 사람들"이 있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p.29)고 마음을 다잡는 사람이 있고, "소멸해가는 싸움에도 연대는 필요하다"(p.44)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일로 "허물어진 자리를 책임으로 메우"(p.93)며 버티는 사람이 있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만 "우리 정말 잘 싸웠다"며 스스로 기억하고 인정하는 사람이 있고, 세상이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평하는 노동을 하면서 "자신은 쉽게 대체될 수 없다고", "내가 없으면은 회사가 일을 못 합니다"(p.192)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이다.


_여기, 한 작가가 있다. "사건이 지나간 후, 그 뒷자리에서"(p.10) 여전히 삶을 계속하는 사람들의 흔적을 기록하는 그는 늘 스스로를 경계하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절박함을 글쓰기로 활용하는 사람"(p.8)이 될까 봐. 자신의 기록이 "한순간 필요에 의해 소비"되는 글이 될까 봐.


그러한 "경계심"이 담긴 그의 글은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든다. 왜 나는 엄연한 존재들을 보지 않고 듣지 않았는가. 왜 보려고 하지 않고 들으려고 하지 않았는가. 그 존재들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게 가리고 막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는가. 왜 나의 안타까움과 슬픔과 분노와 비판은 그것으로만 그치고 마는가. 죄책감과 수치심은 자연스레 어떤 마음을 불러들인다. 결심이나 다짐, 의지 같은 이름을 붙여도 될까 싶은 보잘것없는 마음이다. 하지만 믿고 싶다. 기대를 버리지 않고 싶다. 이런 미미한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한 "뒷자리"는 지금과는 다를 것이라고.


"골프장 때문이었나. 송전탑 때문이었나. 아니면 4대강 때문이었는지. 이제는 기억도 흐릿하지만, 산으로 장비가 올라가는 좁은 길목으로 이동하려는 소수의 사람을 경찰과 용역경비들이 막아 세우는 일이 반복되는 날이었다. 어제도, 오늘도, 그저 사람들을 붙잡아두고 보내지 않았다. 긴 답보상태에서 한 환경운동 활동가가 하는 말을 들었다. 저들은 지금 우리에게 무력감을 학습시키는 거라고. 너희들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는 거라고. 그 무력한 마음이 쌓여 내일 나오는 사람이 한 명 줄고 두 명 줄고, 이런 일을 기다리는 거라고.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내일도 나오고, 모레도 나오는 거라고.(...)무력할 일은 많으나 해야 할 일도 많다. 내일 또 이 자리를 지키는 일 같은."(p.71)


_그러니 나와 당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타까움과 슬픔과 분노와 비판의 마음을 지키고, 죄책감과 수치심과 연대감을 지키고, 죄책감과 수치심과 연대감이 불러들이는 결심이나 다짐, 의지 같은 어떤 마음을 지키는 일. 그 마음이 남길 "뒷자리"를 지키는 일. 지키는 마음을 오래오래 지키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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