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슬픈 세상에 기쁜 말은 무엇입니까.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정혜윤

슬픈 세상. 맞는 말이다.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는 곳,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는 곳,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벌어지는 곳, 어둠이 쉬이 물러가지 않을 뿐 아니라 매번 다시 찾아오는 그 곳.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세상은 본래 그런 곳이니 부인할 수 없어 인정하지마는 그 뒤끝이 씁쓸하다. 그래서 때로는 놀랍고 신기하다. 이런 '슬픈 세상'에서도 살아내려 애쓰는 우리를 생각하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 있다. 하루에도 수천번씩 집요하리만큼 나 자신에게 캐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슬픈 세상에서 당신은 왜 살아가고 있나요? 어떻게 살아낼 수 있나요? 이 질문을 바꾸어 말하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책의 부제이기도 한 이 물음에 진지해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테두리 없는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기는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사랑, 희망, 가족과 같은 말이 아님은 분명하다. 과연 나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작가는 말한다. "지옥이 있으므로 천국이란 단어가 필요했던 것처럼, 슬픔이 있으므로 기쁨이란 단어가 필요했던 것처럼, 삶이 짧음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아름다움이 필요했던 것처럼"(p.48) 우리에게는 "말"이 필요하다고. 물론 "말"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시대에 모든 "말"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말"은 저마다의 슬픈 세상에서 휘발되지 않고 오래도록 남는다. 사는 일은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리운 것이라 했던가. 어떤 "말"은 그럼에도 '사는 일'을 계속하는 우리를 붙들어준다.


남도의 작은 어촌 마을의 늙은 어부, 제주도의 해녀 할머니, 두 명의 자폐증 아들을 키우는 낚시꾼,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 재래시장 떡집 아주머니와 야채장수 아주머니, 갯벌에서 굴 채취하는 아낙들, 9.11테러 유족과 생존자들, 세월호 유족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살아온 인생은 다르지만 자신의 삶에서 "말", 즉 "단어와 이야기"를 찾은 사람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직접 만나 보고 들은 "말"을 전한다. 가난, 우울, 슬픔, 끔찍한 재난 등 다양한 삶의 굴곡을 지나고 있는 그들이 찾은 "말"은 소위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같은 거창한 격언이나 명언이 아니었다. 약속, 일기, 동화책, 컵, 꽃이 폈어, 달, 유리창, 목소리, 이름, 우리..언뜻 보아서는 어떤 사연을 품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평범한 단어였다.


슬픔은 슬픔을 알아본다는 말이 있듯, 저마다의 슬픈 세상에서 건져 올린 그 단어들은 나의 슬픔도 단번에 알아보았다. 많이 외롭고 힘들었지. 나도 그랬어, 하며 나를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비정한 운명이 할퀴어버린 내 삶의 상처만큼이나 지독한 슬픔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이라서 더 와닿았다. "치유와 긍정의 말들을 사나운 헤드라이트 불빛처럼 얼굴에 들이대"는 말이 아니어서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들의 마음과 내 마음이 연결되는 듯 메마른 마음에 온기가 돌았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일로 알게 된 모든 것을 당신께 알려드릴게요. 온 힘을 다해 당신을 도울게요. 당신은 나보다 덜 슬프도록요." (p.99)


"'우리'가 되면 내게 일어난 많은 일은 내게만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된다. 한때 혼자서만 슬퍼했던 경험이 공통의 경험이 된다. 거기서 나는 내가 아닌 척할 필요가 없다. 훨씬 더 이상적인 나인 척할 필요도 없다.(...)우리는 '우리'안에서 내가 왜 이 일을 겪었을까 잠시나마 이해 비슷한 것에 이르기도 한다."(p.228)


이야기로 이루어진 슬픈 세상에서 자신만의 "말"을 찾은 사람은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에게 있어 그 "단어와 이야기"는 무엇일까. 나를 살아 있게 하는 "말"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본다. 그런데 어쩐지 자꾸 이 시(詩)가 맴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조용히 울고 있었다./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까맣게 몰랐다./-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그는 몰랐다. _신경림 <갈대>


정확하게는 마지막 연이. 그렇다면 나를 살아 있게 하는 "말"은 어쩌면,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