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페이지마다 하늘의 푸르름이 스며든 책만을 좋아합니다. 죽음의 어둠을 이미 경험한 푸름말이에요. 나의 문장이 미소 짓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어둠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p.21)
작가의 고견에 감히 견줄 바는 못 되지만, 나 역시 '하늘의 푸르름이 깃든 어둠'에서 나온 책을 좋아한다. 배려 없는 긍정과 허울 뿐인 희망을 강요하는 책이나 말에는 거의 무조건적인 거부 반응이 일어나서 일부러 피하는 편이다. 대신 어둠의 심연에서 헤맬 만큼 헤매다 겨우 뭍으로 나와 발을 디뎌낸, 안간힘과 눈물겨움이 배어 나오는 책을 찾는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책은 "하늘의 푸르름이 스며든 책"이다. 그의 글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느슨하게 풀어진 마음으로는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그의 단어와 문장은 많은 비유와 상징으로 쓰여져서 한 번 읽는 것으로는, 게다가 느슨한 마음으로는, 글에 녹아든 그의 생각과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다.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은 긴장한 채로 반복해 읽으면 그제서야 깨닫게 된다. 그런 비유와 상징이 쓰인 까닭을, 그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임을. 그리고 한 글자씩 옮겨 적으면서 부끄럽지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아름다운 단어와 문장, 뜻으로 이루어진 책을 읽고 쓰는 내가, 어쩌면 조금은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이 책을 읽기 전보다 아주 약간은 나은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미약하지만 우쭐한 기분 말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환희의 인간"이 되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보뱅의 매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잠깐이나마 "환희의 인간"을 맛본 나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손 안에 움켜쥔 모래처럼 곧 새어나갈 것이 분명한 이 "환희"를 조금이라도 더 음미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다. 보뱅이 영감을 얻은 것들이 그러했듯 사소하고 작은 것이다. 푸른 하늘, 그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 구름이 지나간 자리의 둥글고 밝은 달,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 어린 아이 그리고 책과 커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결코 그 순간이 아니다. 죽음, 사랑, 아름다움, 이 모든 것들이 은총과 우연에 의해 불시에 나타날 때, 그것은 결코 그 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그 순간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시간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주 일찍 시작됐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주 일찍, 그의 삶에 죽음이 찾아왔다는 것을,"(p.50)
"나는 하늘의 푸르름을 바라본다. 문은 없다. 아니면 오래전부터 문은 이미 열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끔 이 푸르름 안에서 꽃의 웃음과 같은 웃음 소리를 듣는다. 곧장 나누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그 푸르름을, 당신을 위해 여기 이 책 속에 담는다."(p.185)
하늘의 푸르름을 닮은 겉표지의 이 책 속에, 작가가 살뜰히 담아낸 그 "푸르름"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