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침 산책길에 목소리로 먼저 만났다. 팟캐스트 #책읽아웃 게스트로 나온 작가는 자신을 사람들의 노동 이야기를 듣고 적는 '기록 노동자'라고 소개했다. 옅게 떨리는 목소리에 진솔함이 가득 묻어났다. 걷는 속도를 줄이고 숨을 고르며 귀를 기울였다. 그의 글은 어떠할까, 궁금했다.
'노동'과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겠거니 짐작했는데 절반만 맞은 셈이었다. "노동 없이 생존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노동을 말할 때 노동에 관해서만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과 삶, 구조와 사회, 보이진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다양한 힘을 말하지 않고 자신의 노동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지나치고 보지 않는, 세상이 비켜가고 숨기는, 그래서 "아무도 쓰지 않는" 이야기까지도.
책보다 먼저 만난 그의 목소리에 나를 이끈 건 몸에 밴 듯한 배려와 성찰의 태도였다. 방송이라 짐짓 꾸며낸 것 같지 않았다. 오랜 세월 부단히 자신을 경계하고 닦달하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만이 풍길 수 있는 기운이었다. 글을 읽으며 내 직감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했다. 단어 하나, 쉼표 하나에도 타인의 말을 올곧이 알아듣고 이해하고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 애쓰는 작가의 고뇌가 새어나왔다.
작업복만 입으면 투명인간으로 변신하는 청소 노동자, 장기 농성중인 부당 해고 노동자, 우리 옆에서 일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성소수자, 일터에서 일하다 병을 얻거나 죽는 노동자들, 20년을 기술자로 일해도 중층 하도급 구조에서는 늘 일용직 노동자로 취급되는 건설 노동자들..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세상이 보이지 않고 읽히지 않는 공간에 두는 사람들"이다. "세상이 '소외된 사람', '목소리가 없는 사람',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명명한 사람들"이다.
"세상이"라고 언급된 곳에 나 역시 엉거주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소외시킨 줄 모르고 "소외된 사람"이라 했고 내가 보지 않고 지나쳤으면서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 했다. 그들에게 묻지도 않으면서 "목소리가 없는 사람"이라 했고 그들을 알지 못하면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므로 어쩔 수 없다며 지레 단념하고 포기했다.
작가는 '있지만 없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도시 외곽으로 밀려난 잿빛 공단에, 철거를 기다리는 낡은 동네에, 거리 한복판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한 평짜리 농성장"으로. 그곳에 그에게 '말'을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는 이의 눈빛, 몸짓, 헛기침, 침묵, 떨림까지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동시에 '말'을 묻고 듣고 쓰는 자신의 태도를 끊임없이 성찰한다. "삶에서 건져 올린 '말'이 얼마나 귀한지" 알고 있기에. 사람 사이에서 작동하는 '말'은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믿음과 희망을 놓을 수 없으므로.
"그럼에도 쓴다. 이유는 간명한데, 그가 말하기 때문이다.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그는 말하고자 한다.(...)자신에게 벌어진 가혹한 일이 내일도 모레도 끄떡없이 계속된다. 나는 죽을 것 같은데 세상은 몹시 말짱하다. 그 말간 얼굴을 한 세상에서 자신과 같은 일을 겪는 사람들이 오늘도 생겨난다. 그러니 말한다. 읍소하고 항변하고 동의를 구하고 지지와 연대의 끈을 찾는다. 사람이라 말하고, 사람에게 말하고, 사람들 속에서 말한다. 품평과 비난도 사람이 하지만, 위로와 연대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까진 언어가 필요하다."(p.209)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우리의 시선은 우리가 아는 만큼 세상에 가닿는다. 알지 못해서, 알고 싶지 않아서 시야에서 제쳐 둔 사람들이 같은 세상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자각한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들을 생각한다. 나의 '착각'으로 인해 조각나고 지워진 누군가의 삶과 애씀을 헤아린다. 무해하고 유익하다고 여겼던 나의 앎과 관심이 실은 허울 뿐인 위선과 편견이었음을 부끄럽지만 인정한다.
세상이 보지 않고 듣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 올곧이 보고 듣고 적으려 애쓰는 작가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