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과정

[헤아려 본 슬픔], C.S. 루이스

_책을 펴고 첫 장을 다 읽기도 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첫 페이지부터 이러면 어떡하죠? 물론 대답을 바란 물음은 아니었다. 질문의 대상 또한 없었으므로 그저 깊은 공감에서 우러난 무의식적인 외침이었을 것이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뒤 한줄씩 밑줄을 그어 가며 읽는데 지금 내가 어디에 밑줄을 긋는 건지, 책인지 마음인지 헛갈릴 지경이었다. 나중엔 연필을 내려놓았다. 이러다간 책 전체에 밑줄을 긋게 될 판이었다.


많은 장면이 나를 맴돌았다. 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 존 디디온 <푸른 밤>, 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 같은 책들이 눈앞에서 두서없이 펼쳐졌다. 영화 '해리 포터'에 나오는 마법책처럼 스스로 펼쳐진 채 나 여기 있다고, 내가 기억나지 않느냐고 경쟁하듯 묻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정신없는(?) 와중에 홀로 희미한 불빛을 받은 듯 어렴풋이 보이는 존재가 있었다. 바짓가랑이에 매달리듯 그 책들을 붙든 채 웅크리고 있는 초라한 뒷모습은 한숨을 내쉬는 것 같기도, 부들부들 떠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했으나, 분명한 건 간절해 보였다. 무언가를 절실히 구하고 있었다.


_이제 그 존재는 <헤아려 본 슬픔>을 기도하듯 두손으로 붙잡고 있다. 기독교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기독교 변증론으로 유명한 C.S. 루이스는 '하나님'으로 회귀했지만, 오랜 세월 무신론자였다가 잠시 천주교신자였다가 다시 무신론자가 되기로 결심한 그녀는 언제부턴가 기도하듯 책을 읽고 있다. 그녀에게는 책이, 다음 문장들이 구원이고 자비이고 은총이다.


_"아주 뜻밖에도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실은 그다지 신경 쓰고 있지는 않아. 따지고 보면 그렇게까지는 아니야'라며 설득하려 들 때가 있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H를 만나기 전에도 행복했지 않나.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일을 넘어가게 마련이지. 이봐, 나는 그다지 험난하게 처신하지 않을 거야. 무안해하면서도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잠시 동안은 제법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뜨겁고 얼얼한 기억이 덮쳐 오면, 이 모든 '상식' 따위는 화로에 던져진 개미처럼 가뭇없어지고 만다. 그 반동으로 눈물과 비애에 빠져든다. 청승맞은 눈물. 차라리 격한 고뇌의 순간이 더 낫겠다. 그건 최소한 깔끔하고 정직하니까. 그러나 자기 연민에 푹 빠져 그 속을 헤어나지 못하고 몸부림치며 뒹구는 데서 오는 느끼하고 끈적끈적한 쾌락이란. 구역질이 난다. 이러는 와중에 정작 H 자신은 왜곡된다는 것도 안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리면, 잠시 후 나는 실제 여인이 아닌 그저 허수아비 인형을 두고 울고불고 하게 되는 것이다."(p.19)


"모든 불행의 일부는 소위 그 불행의 그림자이거나 반영이다. 단지 고초를 겪는 것이 아니라 겪고 있는 고초에 대해 계속 생각해야 하니까 말이다. 단지 가없는 매일매일을 슬픔 속에 살아야 할 뿐 아니라, 날마다 슬픔 속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매일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p.26)


"나는 나의 불행을 겪고 있었지 그녀의 불행을 겪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불행을 겪고 있었지 나의 불행을 겪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다른 길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 냉담한 진리."(p.31)


"나는 내가 어떤 상태를 묘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슬픔의 지도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슬픔은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그것은 지도가 아닌 역사서를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슬픔은 마치 긴 골짜기와도 같아서 어디로 굽어들든 완전히 새로운 경치를 보여주는 굽이치는 계곡이다."(p.88)


"나는 이제 노회하여서, 그 고통들이 '지속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은 더 이상 닫힌 문에 부딪히지 않는다.(...)급작스럽고 두드러지며 감정적인 변화 따위는 없었다. 마치 방이 더워지거나 아침이 밝아 오는 것과 같다. 처음 그 기운을 알아차릴 때면 이미 한참 지난 후인 것이다."(p.89)


매거진의 이전글"좋아하면 어떻게든 그 곁을 서성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