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만세], 정용준
_예약주문하고 기다린 책을 받았다. 어쩐지 아껴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 별 생각 없이 책상 한쪽에 올려 두었다. 난생 처음 도전하는 소설 공모전 마감을 앞둔 몇 주 동안, 이 책은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 겉표지 속 앙리 마티스의 인물도 무언가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듯한 모습인 아닌가.
지난 6개월 동안 끙끙대며 쓴 것를 붙들고 퇴고한답시고 마음이 몹시 부대꼈던 나는, 나를 보면서 '소설 만세'라고 속삭여 주는 이 인물에게 자꾸 눈이 갔다. 컴퓨터 앞에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쥐어뜯다가, 몇 글자 썼다가 지우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한숨을 내쉬다가 그를 보았다. 고치고 또 고치던 중 머리가 핑 도는 느낌에, 더는 못 하겠어, 라는 말이 절로 입밖으로 터져나올 때마다 그를 보았다. 그러면 몇 주간 매일 눈빛을 교환하며 (나 혼자) 꽤 친숙해진 그가 작게 말해 주는 것이다. '소설 만세'라고. 나는 벌떡 일어났던 의자에 슬그머니 앉았다. 다시 모니터로 눈길을 돌리면 또 보였다. 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고쳐야 할 것이. 읽을수록 존재를 드러내는 고쳐야 하는 것들이.
결국 엉망인 게 분명한 원고를 부친 뒤 잔뜩 울적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그를 보았다. 매번 같은 표정으로 '소설 만세'라고 말하는 그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정말 '소설 만세'인 게 맞니? 이제와 솔직히 말하는데 그동안 네 생각과 마음이 너무 알고 싶었어. 그래서 몇 번이나 너를 펼쳐서 들여다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어. 너에게서 용기와 격려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너를 제대로 알게 되면 그러지 않아도 희미한 자신감이 메마를까 봐 겁이 났거든. 이런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
마지막 책장을 덮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발췌필사까지 야무지게 마친 지금, 나는 약간 들뜬 상태다. 부끄러우면서도 다행이어서, 불안하면서도 안도감이 들어서, 모르면서도 알 것 같아서, 지금 보이진 않지만 언젠간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이 책을 읽고 내가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아서. 이런 내가 아주 오랜만에 마음에 들어서.
_무엇인가를 좋아하고 계속하면서 잘하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무엇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고 지키고 싶은 이는 다른 대상을 향해 같은 애정을 품은 사람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마련이니까.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작가 지망생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내 경우에는, 고작 몇 달 경험해 봤다고 그것도 제대로 겪은 것도 아니고 흉내만 내본 건데도, '어머, 저도 그랬어요. 제가 딱 그런 기분이었다니까요' 라고 속으로 호들갑을 떨며 읽었던 문장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르겠다ㅠ)
<소설 만세>에는 소설가이자 문학애호가, 문예창작과 교수님이자 네이버 오디오 클립 <한 사람을 위한 문학 이야기> 창작자, 키보드 애호가이자 '문학선생님'인 작가 정용준의 소설을 향한 순도 높은 애정과 선한 영향력이 페이지마다, 행간마다, 단어마다, 글자 사이사이마다 향기처럼 스며들어 있다. 강렬하고 진하진 않으나 은은하고 잔잔하게 만세(萬歲)까지 이어질 향기가. 수줍은 듯 작게 외치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소설 만세!"
_"소설이 비록 허구이지만 그 세계에 존재하는 인물과 인물을 둘러싸고 발생한 사건의 성질을 디테일하게 잘 다룰 수만 있다면 실재 세계의 본질과도 닿는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읽는 자들은 허구의 세계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비추고 허구의 인물의 내면과 삶의 태도에 공감하거나 동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p.18)
"그건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전후 사정과 내면과 이면에 대해 묘사하고 진술하는 일. (...) 숨겨진 사연과 감춘 사건을 모두 뒤져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문장으로 써 내는 일.“(p.46)
"내버려두면 마음은 사라진다. 아무리 소중하고 중요하고 내게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두면 약해지고 작아지며 결국 소멸되고 만다. 좋아하는 마음, 열정, 흥미, 다 똑같다. 계속 좋아하고 싶으면 노력해야 한다. 줄어들지 않도록 사라지지 않도록 애를 써야 한다."(p.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