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김사과 외 22인
_이런 병에는 약도 없다는데. D는 생각했다. 아이를 등교시킨 뒤 오전 걷기를 끝내고 1층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려던 참이었다. 조금 전 423동을 향해 걸어오는데 저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리는 아침 햇살이 마치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 같이 보이는 게 아닌가. 저도 모르게 우뚝 멈춰 선 D의 머리속에선 이런 생각이 스쳤다. 저것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언젠가 꼭 써봐야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하는 마음에 급히 다시 나갔지만 그땐 이미 조금 전 D가 본 풍경이 아니었다. 실망하면서도 계속 그것을 다시 그려 보려 애썼다.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D를 툭툭 치며 물었다. 그런데 저기요, 그걸 왜 아쉬워하는 거에요? 멋쩍어진 D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제가 왜 이러는 걸까요? 저도 이런 제가 낯설고 어이없고 가소로워요. 정말 병에 걸린 건 아닐까요? 소설가병 아니면 작가병? 왜 연예인병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잠자코 D의 횡설수설을 듣고 있던 목소리가 대꾸했다. 연예인병은 연예인이 걸리는 거잖아요. 당신은 소설가도 작가도 뭣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병에 걸릴 수가 있죠? D는 목소리를 못 들은 척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사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다. 몇 달 전 소설이라는 것을 쓰겠다고 아무도 관심 없는 SNS에 공언해놓고 뭐라 이름 붙이기 곤란한 그것을 구상하고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D의 눈과 귀의 역할은 늘어났다. 극히 제한적인 D의 활동반경 - 아침 산책길, 마트, 카페, 병원, 쇼핑몰, 친정, 시댁, 집 - 안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보였으나 보지 않던 게 보였고, 들렸으나 듣지 않던 게 들렸다. 가능하다면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고 깊이 귀기울이고 싶었다. 의욕만 과다할 뿐 허술한 그 레이더망엔 D 자신도 포함되었다. 방금 전 스쳤던 생각 괜찮은데? 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기억해야겠어. 며칠 전엔 잊어버렸으니 이번엔 휴대폰에 메모해 둬야지. 한참 문자판을 누르던 D는 피식 웃었다. 자조 섞인 비웃음이다.
_집으로 들어오자마자 D는 전기포트 물을 끓이고 커피머신 전원을 켰다. 그 사이 손을 씻고 편한 바지로 갈아입으면 바로 커피를 내릴 수 있다. 진한 커피 한 잔을 들고 곧장 방으로 들어와 책상에 앉음과 동시에 컴퓨터를 켰다. 이것저것 끄적거린 이름만 거창한 구상노트도 폈다. 이 일련의 과정은 시간차 없이 착착 이어져야 했다. D가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이때 뿐이다. 아이가 하교하기 전에 주어지는 오전 네다섯 시간. 그러니 D에겐 단 몇 분이라도 소중하다. 바탕화면에 '퇴고 5차'라는 이름 붙여진 파일을 열려는 찰나 전화가 온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정엄마가 점심 먹으러 오라고 한다. D는 지금은 바빠서 안 된다고 답했다. 네가 바쁜 게 뭐 있냐고 엄마가 묻는다. 지금은 뭐 좀 할 게 있어서 바쁘다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D에게 엄마는 답답한듯 묻는다. 그러니까 뭘 하길래 바쁘냐고. 살짝 짜증이 난 D는 아무튼 지금은 바쁘니 이따가 저녁에 아이와 같이 가서 먹겠다고 말을 잘랐다. 어차피 저녁은 내 시간이 아니니까, 라는 속말을 삼키며. 알았다고 전화를 끊는 엄마는 서운한듯 했지만 어쩔 수 없다. D가 소설이라는 것을 쓰겠다고 매일 붙들고 있는 걸 아는 사람은 가족 중엔 남편 하나 뿐이다. 남편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각종 편의(?)를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지인 중엔 두 명. 그리고 D를 모르는 SNS 사람들. 처음 도전하는 공모전 마감일이 다가오면서 조급한 D는 얼른 파일을 열었다. 볼수록 마음에 안 들고 허접한 그것을 또 읽고 고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특히 지난 밤처럼 마음에 드는 소설책을 읽고 나면 더 괴롭다. 고차원의 글로 한껏 고양된 눈과 마음이 순식간에 저렴해지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그럼에도, D는 자세를 고쳐 앉은 뒤 제가 쓴 것을 또 읽고 고치기 시작했다.
D는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모른 채 사십일 년을 살아왔다. 고등학교 땐 친한 친구들 따라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이과반을 선택했고 그 결과 고3 땐 반에서 혼자 문과 계열 선택과목을 공부해야 했다. 당연히 수능 성적에 맞춰 대학과 전공을 선택했다. 취준생 무렵 직업으로서 공무원 붐이 일어서 휩쓸리듯 공시 준비를 했고 운이 좋아 합격했다. 십 년을 억지로 공직에 몸을 담갔다가 아이가 희귀난치병에 걸리면서 퇴직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은 순탄한듯 했던 D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전생과 후생으로 나눌 정도로. 이제 팔 년이 되어가지만 그 중 삼 년은 끔찍한 자기연민과 자기혐오에 빠져 지냈다. 그러다가 소설을 만났고 빠져들어 읽다 보니 언감생심 쓰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게 된 것이다. 소설을 읽고 또 어쭙잖게 끄적이는 동안 만큼은 D는 고된 현실에서 한발 빼낼 수 있었고, 그런 자신이 아주 조금 마음에 들었다. D는 아직도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자기연민과 자기혐오의 늪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났다는 건 안다. 운명처럼 D를 찾아온 소설 덕분에.
_다른 대부분의 삶도 그러하겠지만, D 역시 어떻게 하다 보니, 남들 하는 대로, 사정에 맞춰서, 어쩔 수 없다 보니, 되는 대로 살아 왔다. 그런 D에게 사십 일년 만에 하고 싶은 게 생긴 것이다. 소설을 쓰고 싶고, 이왕이면 잘 쓰고 싶고,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남들에겐 터무니없어 보인다는 걸 D도 잘 알고 있고 사실 스스로도 늘 어이가 없다. 그런데도 마음이 끌리는 건 D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지금도 불행의 한복판을 지나는 D는 소설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어색하지만, 그게 참 좋다.
현재 D의 나이 42세. 소설에 빠진 4년. 그렇다면 소설을 만나기 전의 시간은 38년이다. D에게 4년 >> 38년이라면, 소설에 마진이 남은 걸까. 그런 게 남았다면 얼마나 남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