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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온 Oct 15. 2021

난 아직도 면접이 무섭다

아직도 난 내 자신을 직면하는게 어렵고 무섭다

2021년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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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이상하게 산 걸까?]


다분하게 개인적이지만, 끝이 없는 가스라이팅과 별별 말도 안되는 차별들로 인해 내 몸과 정신의 퓨즈가 절단 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지난 6월 플랜B도 없이 퇴사를 감행했다. 그때도 지금도 다소 무모한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지만, 단 하나의 후회도 없다. 그 당시 함께 퇴사한 선배와도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여튼 한 달 반 정도 아무 생각 없이 원 없이 쉬었지만, 점점 줄어드는 은행 잔고를 보며 놀고 싶다는 생각도 그나마 소량 남아있는 자존감도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그 험하디 험하다는 취업 시장에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난 번 회사의 악몽은 떠올리기도 싫어, 지난 취업때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구직을 시작했다.

1) 그 회사에서의 현/전 재직자가 아닌 이상, 타인이 늘어놓는 회사 장점들에 혹하지 말 것

2) 서치도 지원도 다 내가 할 것

3) 그들만 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이들과 내가 성격적으로 맞을 지 고민 해 볼 것.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구직자는 원하는 조직에 '픽' 당해야하는 신세다보니 (3)번은 개인적으로 머리 속으로는 수 백번 되내겼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부분 지켜지지 못했다.


여튼, 최근 신입이건 경력직이건 잡 인터뷰는 주로 3-5회 사이인 것 같은데, 좀 많다 싶긴 하지만, 회사도 오랜 시간 회사와 함께할 사람이 필요하니, 신중하고 또 신중해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바이다.


여튼, 본격적인 면접이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멘탈이 털린다. 특히 내 이력서에 적힌 과거의 나의 행적들을 하나 둘 들출때면 지난 날 나의 경력에 대한 회의 뿐만 아니라, "내가 그렇게 이상하게 살았나, 잘못 살았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처음엔 '그래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건 좋지'하며 넘어갔지만, 점점 더 여러 회사와 여러 라운드의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다른 사람이 보는 나, 내가 보는 나를 마주하는 일은 점점 더 버거워져 갔다.


[우린 앵무새를 원하는 게 아니예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한 회사와 6차까지 면접을 봤다. "면접 봐볼래요?"하고 링크드인 메시지가 온 그 날부터, 마지막 최종 인터뷰까지 정확하게 3개월하고 10일이 걸렸다. 근 100일되는 시간동안 그 회사와 2.5-3주마다 한 번씩 6명의 면접관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치가 떨리게 무례한 사람도 있었고, 마음에 꼭 맞는 친절한 면접관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와 만나게 되던, 대부분 비슷한 질문과 경험에 대해 물었다. 다만, 이미 서로 지난 면접에 대한 피드백을 공유했는지, "이전 인터뷰와는 다른 답변을 부탁한다"라는 전제가 붙었다.


대부분 경력직은 "가장 잘 했던 캠페인, 가장 아쉬웠던 캠페인이 무었이었는지. 해당 캠페인을 다시 재개한다면 어떻게 어디서 어떤 방향으로 다시 설정한 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기에, 머리속에 떠오르는 3, 4가지 캠페인으로 어찌어찌 답변을 해 냈던 것 같다. 당연히 업무에 바로 투입이 되었을 때, 이 사람과 함께 나아갈 수 있겠느냐에 대한 확신이 그들도 들어야하기 때문에 해당 질문은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가장 어렵고 애매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우리 회사는 지금 xxxxx한 부분이 약한데요. 어떤 전략과 스킬로 이 부분을 해결해야하고, 대략적으로 KPI가 xxx 정도라면 가정할 때 타임라인 얼마나 필요할 것 같아요?"


신기하게 이 질문에는 어떤 팀의 어떤 직무를 담당하는 면접관이 들어오던, 그들이 제시하는 회사의 상황과 위기도, 풀이 방법도 비슷하길 원했다. 한가지 의아했던 것이, "우리는 같은 답에도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해대는 인재가 아니라, 다각도로 풀어나갈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며 비슷한 질문으로 무려 5-6번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나에게 궁금했던 건, 반대로 생각해보면 "내가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 앵무새처럼 또박또박 읊어주기를 원한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회사에 대한 제한적인 정보만 가진 나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그들의 취향에 맞게 읽어내라는 것은 어딘가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은 내가 앵무새이길 원치 않듯, 동시에 앵무새 같은 답변을 해내기를 기대하는건가 하는...


[어쨌든, 그렇다]


합격 레터가 온다면, 그 회사에 갈지 말지에 대한 패는 나에게 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매우 길고 험난하고 마음 졸리는) 나는 을 중의 을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무섭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 자부하지만, 그들이 꼼꼼히 훑어내는 내 지난 과거와 경력에 의문심을 들게 하고, 안그래도 작아진 새 가슴이 더욱 쪼그라든다.


내가 좀 더 나에게 당당했다면, 좀 더 아무렇지 않게 나의 과거와 나의 현재를 마주할 수 있었다면 면접이라는 거 조금 덜 무서울 수 있었을까? 결론은 난 아직 남이 직면하는 나도, 내가 직면하는 나도... 무서운 소심한 한 사람일 뿐이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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