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공부할 기회를 알차게 보낸 대학생활
수능을 보고 40살에 대학에 입학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학 강의실 문을 열자, 네 살 많은 언니가 같은 과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싱싱한 20대 학생들 사이에서 ‘아, 나는 도대체 어떻게 어울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딱 적당한 나이차의 ‘구세주’를 만났다.
게다가 특별전형으로 두 명이 입학했는데, 같은 과에서 공부하니 파릇파릇한 현역들 틈에서 주눅들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운명 아니겠는가? 그 언니도 의지할 학우가 생겼다며 나를 무척 반가워 했다.
개강 후 봄 날, 캠퍼스에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걸렸다.
“1억 원 발전기금 낸 부정 입학자 퇴교 조치하라!”
플랑카드를 읽어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내 실력으로 경쟁을 뚫고 왔으니 음... 최소 1억은 벌었구나?'
경쟁률 높은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에 뿌듯해졌다. 함께 수능 공부하던 학원의 학우들이 부러워했던 이유에 깨달음이 왔다.
같은 지역에서 다니는 경영학과 학우가 어느 날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다녔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아이고, 안되겠다!' 싶어 매일 차로 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캠퍼스가 넓어서 수업 끝나고 다른 강의실에 차로 데려다 주고 내 강의실 오면 늘 지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그 학우가 묘한 눈빛으로 물었다.
“언니, 나한테 왜 그렇게 잘해요? 혹시 레즈비언 아녀요?”
“내가 너 사랑하냐고? 까불지 마라. 길에다 두고 간다!”
후배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언니 같은 사람 있으면 결혼하고 싶어요.”
“결혼은 도움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야. 네가 그 사람을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될 때 하세요.”
그 후, 후배는 한동안 목발을 짚고도 알아서 잘 다니는 듯했다.
대학에 들어오니, 교수님들은 절대 밥상을 차려 주지 않았다. 수업하는 레시피 정도만 던져 주는 느낌이었다. 교환학생, 배낭여행, 연구 프로젝트... 선택지는 많았지만, 그것을 잡는 것은 학생의 몫이었다.
수업 과제는 더욱 가혹했다. 책에 있는 내용을 분석해서 자신의 생각을 창의적으로 써야 했다. 또 단편 소설 한 권씩 학기마다 필사를 해야해서 정신이 없었다.
"시험 문제가 짧은 이유가 있었구나..."
대학 시험은 학생이 직접 가설을 세우고 논리를 전개해야 하는 ‘창작의 장’이었다.
어느 날 강의실 문에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오늘 휴강합니다.”
"아니, 미리 공지를 하든가! 이 귀한 수업이 날아가 버린다고?"
어린 학생들은 “웬 떡이냐~!” 하며 신이 났지만, 나는 가게 문닫고 학교 오는데,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 휴강이라고? 열이 뻗치고 본전 생각이 나서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 이 수업은 4년 내내 배우고 싶을 만큼 중요하고 알고 싶은 게 많은데 꼭 보강해 주세요.”
교수님은 씩 웃으며 말했다.
“휴강하면 학생이 제일 마음에 걸렸는데 꼭 보강 해 줄게요.”
그러면서 내가 학교 오는 날을 맞춰 보강을 해 주셨다.
나는 교수의 길을 꿈꾸며 수업할 때 교수님들의 농담 하나도 놓치지 않고 필기했다.
국문과 학생들이 시험 답안을 B5 용지 앞, 뒤 꽉 채우는 모습을 보면서는 "세상엔 나보다 더 독한 사람들이 많구나!" 싶어 기절할 뻔했다.
“장학금을 받으려면 교우관계도, 낭만도 포기해야 한다.”
낭만을 즐기는 대학생들에게는 융통성 없고 재미없는 사람처럼 보여도 현역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우리 아이에게는 절대 장학금 받을 정도로 공부하라고 안 해야지...'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하려면 바보스러울 정도로 엉덩이 붙이고 공부에만 매달려야 한다.
"대학생들이여, 젊음을 맘껏 즐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