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중을 졸업하고 여고에 진학했다.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내 외모였다.
중학교 땐 정말 아기 같았다.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 키도 크고, 얼굴도 조금은 어른스러워졌다.
애티가 슬슬 벗겨지기 시작하니까, 그때부터 꾸미는 재미를 알았다.
써클렌즈를 끼고, 미용실에서 백파마도 했다.
지금 보면 참 촌스럽지만, 그땐 그게 멋이었다.
걸리면 혼나는 거 알면서도,
학생부장 선생님보다 더 일찍 등교하던 시절이었다.
싸이월드랑 세이클럽이 한창이던 때,
친구들을 통해 아는 남자애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근처 남고에 다니는 애가 물었다.
“남자 소개받을래?”
사실, 그땐 ‘남자’가 좋다기보단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이 좋아 보였던 것 같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남자친구가 있었고,
나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필요했던 것 같다.
소개받은 남자애는 뜻밖에도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나는 그 아이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꽤 인기 있었고, 존재감이 강했던 아이.
반면 나는 조용하고,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우리는 다시 만났다.
장소는 우리가 함께 다녔던 초등학교 정문.
어색했지만, 추억이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줬다.
그리고 며칠 후, 문자를 주고받던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그 애가 “사귈래?”라고 보냈고,
나는 “잘해라.”라고 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그 “잘해라”란 말도 어디서 주워들은 걸 흉내 낸 거였으니까.
그 애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고, 성격도 좋았다.
하루 일과가 끝난 밤이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만나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 애는 내 첫 남자친구였다.
한 달쯤 지났을까.
어느 날, 다른 남자애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야, 우리 친구 백일파티 하는데 올래?”
그 애도 내가 남자친구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은근히 유혹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백일파티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때는 미성년자들이 술집을 빌려 몰래 파티를 여는 게 꽤 흔했다.
그날 나는 몰래 그 파티에 갔다.
남자친구에겐 말하지 않고.
서로 다른 약속이 있었고,
약속이 끝난 후 운동장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파티를 마치고 운동장으로 갔다.
그 애도 도착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 애는 너무 취해 있었고,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심지어 토도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뽀뽀해달라고 졸랐다.
계속, 계속.
사실 뽀뽀해달라는 말,
내 남자친구였으니까 당연히 할 수도 있었지.
솔직히 나도, 얼마나 기대했겠어.
그 애는 잘생겼고, 내 첫 남자친구였으니까.
근데… 토하는 걸 봤거든.
입에 오바이트가 묻을까 봐,
그게 너무 싫었다.
그 순간, 기대도, 감정도,
그냥 뚝 떨어졌다.
몇 번 웃어 넘기려 했지만,
계속된 들이댐에 짜증이 났다.
“야, 뭐고 진짜… 왜카는데…”
결국 “그만하자.”는 말이 툭 나왔다.
그날 밤, 내 첫 연애는 그렇게 끝났다.
다음 날, 친구 커플들이 나를 놀렸다.
“김다은 뭔데~ 남자친구랑 뽀뽀도 안 해봤대요~”
그 말은 꽤 오랫동안 따라다녔다.
이상하게도, 그 시절은 민망하고 서툴렀지만
지금 돌아보면 웃긴다.
내가 처음 누군가를 좋아하고,
처음으로 데이고,
처음으로 정 떨어져봤던 시절.
그리고… 처음으로
백파마를 하고 연애를 했던 시절이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그 애는 꽤 괜찮은 첫 남자친구였다.
지금도 친구로 지낼 만큼 좋은 사람이고,
그 시절의 민망한 순간까지도
이제는 다 추억이 되었다.
“세빈아. 기억나나?
사실은… 그래서 그랬던 거다.
장사는 잘 되제?
이쁜 가정 이룬모습 행복해 보이더라.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살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