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는 중풍을 앓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참 가여운 분이었다.
오래 살던 낡은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게 되었는데,
그 무렵 중풍이 찾아왔다.
새집에 입주하기도 전에 몸이 굳어가기 시작했고,
결국 거동이 불편해졌다.
그리고 1년 반 후,
자신을 모시던 큰아들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직 한창인 나이에.
큰아들이 떠난 뒤, 할아버지는 서서히 가족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셨다.
크게 누구를 탓할 수는 없다.
엄마는 우리를 먹여 살리느라 매일 밖으로 나가야 했고,
삼촌들도 생계에 쫓겼다.
큰며느리였던 엄마가 오랜 시간 묵묵히 할아버지를 돌보았고,
말년에는 삼촌들이 돌아가며 모셨다.
말 그대로, 메뚜기 뛰듯이.
그 무렵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동생은 중학생이었고, 엄마는 매일 바빴고,
우리 집엔 늘 여유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자식들 집을 전전하시던 시절,
그건 곧 ‘집에서 밀려난 시간’이기도 했다.
모두가 각자의 사정이 있었고,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큰삼촌 댁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추석을 3일 앞둔 날이었다.
희한하다.
우리 친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추석이 지나고 3일 후에 돌아가셨다.
어쩐지 내게 추석은 늘 이별을 데려왔다.
할아버지 장례식 날, 나는 씻지도 못한 채 급히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큰삼촌 댁 근처에 있는 장례식장이었다.
3일장을 치르며 몸은 찝찝했고, 마음은 어수선했다.
눈물이 나야 할 자리에서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씻고 싶다… 너무 가렵고 찝찝해…’
그리고 결국, 철없이 삼촌에게 말했다.
“삼촌… 저 집에 좀 갔다오면 안 돼요? 씻고 오고 싶어요…”
삼촌은 얼굴을 굳히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 자슥아… 할아버지 돌아가셨는데 지금 그 소리가 나오나? 안 돼!”
그때는 몰랐다.
내가 얼마나 철없었는지.
내가 할아버지를 얼마나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는지.
할아버지는 그저 ‘아픈 어른’이었다.
내가 챙겨야 할 존재라기보다,
누군가가 챙기는 사람.
늘 내 곁에 있지만, 내 일이 아닌 사람.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사회에 나가 살았다.
내 밥벌이에 바빴고, 할아버지는 기억에서 멀어졌다.
그러다 정확히 10년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남자친구와 영화관에 갔고,
우리는 이경규 감독의 영화 <전국노래자랑>을 봤다.
영화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장면만 또렷하게 남아 있다.
딸이, 늙은 아버지에게 어린 손자를 맡기는 장면.
딸은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오지 않았고,
아버지는 말없이 그 손주를 돌보는 노인이었다.
할아버지와는 하나도 닮지 않은 그 인물이,
그 순간 이상하게도 우리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울컥했다. 그리고 터졌다.
영화는 계속 흐르고 있었지만, 나는 거기 없었다.
나는 다시 고등학교 2학년으로 돌아가 있었다.
씻고 싶다고 말하던 나,
귀찮다고 할아버지 끼니를 대충 챙기던 나,
할아버지 옆에 있었지만, 마음은 늘 엇갈려 있던 나.
그날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다.
너무 죄송했다.
내가 받은 사랑에 비해, 돌려준 것이 너무 없었다.
그 무심함이 죄가 되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그 영화는 내게
10년 전,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한 사람을 꺼내준
기억의 열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