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팔공산에서 배고프던 날

by 하린

초등학교 5학년 여름, 야영을 갔다.

장소는 팔공산. 2박 3일 일정이었다.


우리 집엔 텐트가 있었다.

그 텐트를 내가 직접 들고 갔다.

선생님이 짜준 식단표에 따라

각자 쌀, 반찬, 라면, 햄, 아이스박스를 나눠 챙겨왔고,

나는 그걸 진지하게 임했다.

선생님 말대로 뭔가를 해본다는 게

왠지 어른처럼 느껴졌으니까.


첫날은 무난했다.

조별로 밥을 해먹고, 설거지도 하고,

단짝 은아랑 다른 조가 된 게 조금 슬펐지만

나름 질서가 있었다.

그땐 다들 선생님 눈치를 봤다.


둘째 날 아침,

식단표대로 밥을 지었다.

그런데 점심 무렵, 우리 조 애들이 갑자기 이랬다.

“귀찮다. 그냥 먹지말자.”

나는 세 끼 꼬박꼬박 챙겨먹는 애였는데…

“배고프다”고 말하는 아이는 나만 혼자였다.


마침 비까지 왔다.

텐트에 물이 고이지 않게

땅을 파라는 선생님 말에

다른 조 아이들은 밥 짓는 애, 땅 파는 애로 나눠 움직였는데

우리 조 애들은 다 누워 있었다.

나는 진짜 배가 고팠다.

누가 몰래 뭘 먹고 왔는지도 알았다.

그때 속이 쓰리기도, 서럽기도 했다.


오후엔 비가 그쳤고

산을 한 시간 정도 올랐다.

그게 그날 오후 일정이었다.

배고픈 데다 산행까지… 죽을 맛이었다.

그리고 저녁엔 장기자랑과 캠프파이어,

마지막 필수 코스 ‘부모님께 감사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순간,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우리 집 사정을 들은 어른들은 늘 우리 남매에게 말했다.

“엄마한테 잘해야지.”

“너희 엄마 불쌍하잖아.”

“말 안 들으면 엄마가 도망간다.”

“엄마 도망 안 가게 말 잘 들어야지.”


촛불을 꼭 쥔 채,

그 말들을 곱씹으며

혼자 남은 엄마를 생각하니

슬퍼서 눈물이 났다.


그날 밤,

내 텐트는 젖어 있었고

나는 은아랑 강당에서 잤다.

엄마가 싸준 이불이 하나 있었다.

작은삼촌이 가끔 덮던 꽃무늬 담요였다.

하얀 바탕에 핑크색이 은은하게 섞인 이불.

그건 다행히 젖지 않았다.

우리는 그걸 덮고 꼭 껴안고 잤다.


마지막 날,

야영장은 난장판이었다.

다들 짐을 챙기고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왔다.


그런데,

엄마는 데리러 오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이 마중 나와 있었지만

나는 그때 아빠가 없었고,

엄마는 혼자 일을 하고 계셨다.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있어서

그렇게 서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시기, 엄마는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집 근처에서 양말 봉제 일을 하셨다.

공장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1분도 채 안 되는 거리였고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그 앞을 지나게 돼 있었다.


나는 혼자 배낭과 텐트를 들고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일하던 곳 앞에서

엄마를 봤다.


그 순간, 울음이 터졌다.

“엄마아아아으으아아아앙…”

엄마가 날 보더니

장난기 섞인 웃을랑 울랑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와~ 우리 딸~ 많이 힘들드나?”

“다은이한테 좀 갔다올게예~”


공장 사장 아저씨께 얼른 이야기하시고,

바로 내 짐을 대신 들어주셨다.


말이 많은 나는 조잘조잘 말했다.

밥도 못 먹고 힘들었다고,

애들이 자기들끼리 몰래 먹을 거 다 먹고

나는 진짜 한 끼도 못 먹었다고,

엄마한테 고자질하듯 쏟아냈다.


집에 와서

엄마는 밥을 고봉으로 퍼주었다.

나는 평소에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았는데

그날은 다 먹었다.

엄마는 “라면도 끓여줄까?”라고 물었고

나는 “어!”라고 했다.


고봉밥과 라면.

그리고 긴 잠.


야영을 떠났던 건 목요일,

돌아온 건 토요일.

나는 토요일 오후 내내 잤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그때 엄마마저도 없었다면

나는 그 배고픔과 서러움을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우리 엄마는 현실적인 사람이다.

남편이 없으니, 털어놓을 데도 없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감정도, 서운함도 다 말하던 사람이다.


그런데도,

끝까지 내 곁에 있어준 사람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는 그 품 하나로

여기까지 자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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