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어릴 적 참 무서운 사람이었다.
나를 공주처럼 아끼고 예뻐하시긴 했지만, 겁도 참 많이 주셨다.
우리는 엄마에겐 늘 반말을 했지만,
아빠에겐 항상 존댓말을 써야만 했다.
나는 아빠에게 반말을 쓰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하지만 감히 반말을 쓴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만큼 우리 아빠는 ‘위엄’이 있는 사람이었다.
작고 어리던 나도 그 기운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는 장난기가 참 많으신 분이었다.
우리가 무서워하던 그 모습들도,
사실은 모두 ‘연기’였다.
엄하게 보이려는 척.
무섭게 굴려는 척.
그러면 엄마는 언제나 아빠 편을 들었다.
“아빠 말씀 들어야지.”
아마 두 분은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엄마는 언제든 기대고 싶은 포근한 존재,
아빠는 약간 무서우면서도 존경해야 하는 존재.
그래야 균형이 맞는다고.
어느 날, 아빠가 퇴근해서 오시더니
“김다은, 김서준, 일로 와 봐라!”
하고는 우리를 무릎 꿇게 하셨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우리는 겁에 질려 아빠 앞에 쭈뼛쭈뼛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제 너희는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면 안 된다.”
네?
무슨 말이야?
우리는 눈만 깜빡이며 되물었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아빠가 할아버지한테 뭐라고 부르노?”
“아버지요…”
“그렇지. 근데 너희는 ‘아버지’도 안 된다.
‘아버지’에 ‘하느님’을 붙여라.
앞으로는 ‘아버님’이라고 불러라.”
우리는 멍한 얼굴로 “네…” 하고 대답했다.
그날 이후, 퇴근하는 아빠를 현관 앞에서
차렷 자세로 맞이하며 이렇게 외쳤다.
“아버님! 다녀오셨습니까!”
아빠는 흐뭇하게 웃으며 물으셨다.
“오냐~ 오늘 다은이하고 서준이 안 싸우고 잘 있었나?”
그러면 나는 고자질하듯 말했다.
“아버님~ 서준이가 태권도장 갔다 와서 또 뚜디 팼어요~”
그럼 서준이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아버님! 잘못했습니다! 아버님! 잘못했습니다!”
하고 외쳤다.
물론 그 유행은 얼마 가지 않았다.
몇 달쯤 그렇게 부르다 말았고
다시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님’과 ‘아빠’를 섞어 불렀지만,
서준이는 ‘아버님’ 이 아니면 혼났다.
참, 나는 우리 아빠에게 딸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다.
아빠가 일찍 돌아가신 건 너무 아프고 안타깝지만,
그래도 김준하 아빠의 딸로 산 11년은
참 고맙고 복된 시간이었다.
지금도 누가 시집가서 시아버지를 “아버님”이라 부르는 걸 들으면
나는 우리 아빠가 떠오른다.
살아 계셨다면 나는 지금도 “아버님”이라고 불렀을까?
아니면 그냥 “아빠”라고 불렀을까?
존댓말을 계속 쓰고 있었을까,
아니면… 반말을 한 번쯤 해봤을까?
아빠의 늙은 얼굴이…
문득, 참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