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가신 건 초등학교 4학년 가을 무렵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조금은 내성적인 아이였고,
집 안엔 늘 아빠의 인기척이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떠난 뒤, 세상은 뚝 하고 끊어졌다.
조용했고, 슬펐고, 낯설었다.
나는 그 조용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 활발하게,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나서기 시작했다.
그건 어쩌면 나만의 생존 방식이었다.
5학년이 되던 해, 나는 은아를 만났다.
전학생은 아니었고, 그냥 처음 같은 반이 된 친구였다.
은아는 처음부터 나와는 달랐다.
당당했고, 자신감이 있었고, 눈빛이 또렷했다.
말할 때도 망설임이 없고, 뭔가를 하자고 할 땐 먼저 나서는 아이.
나는 그 옆에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따라 하게 되고, 닮고 싶어 졌고,
그 옆에만 있으면 나도 그런 사람처럼 느껴졌다.
은아네 집은 따뜻했다.
아버지는 치기공소를 운영하셨고,
어머니는 늘 집에 계셨다.
부엌에는 간식 냄새가 가득했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람이 있는 기척,
무언가가 나를 기다려주는 공기가 느껴졌다.
나는 그 집에 갈 때마다
아빠가 살아 계시던 시절의 우리 집을 떠올렸다.
그때 우리 집도 그랬으니까.
엄마가 집에 계셨고,
아빠가 돌아올 시간이 되면 김이 서린 창문 너머로 마당을 바라보곤 했다.
은아네 집은,
잊고 있던 그 풍경을 다시 보여주는 집이었다.
어느 날, 하교하는 길에 은아네 집으로 향하던 길.
우연히 마주친 내 동생 서준이가 말했다.
“누나야, 나도 은아누나야 집 가고 싶다.”
사실 난 그 말이 싫었다.
서준이는 말썽꾸러기였고,
어디서든 제멋대로 구는 아이였다.
특히 여자애들처럼 조용히 노는 분위기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안된다. 니 친구들이랑 놀아라.”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그때 은아가 조용히 서준이 손을 잡았다.
“서준이 니도 갈래?”
서준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은아는 말했다.
“그럼 누나야, 집에 가자.”
나는 그 말을 잊지 못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따뜻하고, 꾸밈없던 그 말투.
쫄래쫄래 은아를 따라갔고,
은아보다 여섯 살 어린 은지도, 우리 서준이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딸만 있는 집이었으니,
장난 많고 산만한 남자아이 하나쯤은 신기했을 거다.
은아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편으론 조심스럽고, 한편으론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서준이를 지켜보셨다.
그리고 가끔 서준이가 버릇없이 굴면
“그럼 안 되지.”
조용히, 하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셨고
신기하게도 우리 서준이는 그 말엔 곧잘 따랐다.
그 이후로도 서준이는
“은아 누나네 집 가고 싶다.”라고 종종 말했다.
그때마다 은아는
“같이 가자. 서준이도 델꼬와도 된다.”
늘 그렇게 말해줬다.
그게 나는 고마웠다.
‘동생까지 함께 품어주는 친구’라는 게
그 어린 시절엔 정말 커다란 위로였다.
집에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꼭 한 마디씩 했다.
“은아네 엄마 진짜 좋으시네. 엄마가 너무너무 고맙다고 이야기했다고 은아한테 꼭 전해줘래이~“
“애 참 따뜻하게 컸네.”
그리고 운동회가 되던 날,
엄마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운동장에서
굳이 은아 어머니를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우리 애가 신세 많이 졌지예~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그 장면을 멀찍이서 지켜봤다.
엄마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
그게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도 나처럼
그 집의 따뜻함을
진심으로 느끼고 있었던 거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은아와 연락이 끊겼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그 이름을 기억한다.
“니, 그때 은아 만나고 나서 성격 많이 밝아졌잖아. 엄마가 그때 생각하면 은아랑 은아집에 참 고맙드라~“
맞는 말이다.
나는 은아를 통해
내 안의 무너진 것들을 조금씩 회복했고,
다시 세상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 아이와 그 집은
내가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조용한 출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