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배우는 시간

수시(收屍)

by 하린

오늘 수업에서는 처음으로 수시(收屍) 를 배웠다. 수의(壽衣) 를 입히기 전, 고인의 몸을 한지로 정갈히 감싸는 과정이다. 아직은 마네킹이었지만, 나는 묘하게 차분한 마음으로 손을 움직였다. 사람의 몸이 아니라서 그랬을까,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실제 고인을 마주한다면 나는 어떤 마음이 들까?’라는 물음이 자꾸만 마음속에 맴돌았다. 나는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고, 엄마는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남들은 피하려는 일을 나는 오히려 먼저 겪어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 놀라웠을 것이다.


강사님과 원장님께도 질문을 던졌다. 고인을 처음 대면했을 때의 감정, 험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모실 때의 어려움, 혼자서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들. 원장님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고 하셨다. 강사님은 “비위가 좋아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것은 결국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힘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경우는 고독사라 했다. 오래 방치된 흔적과 함께 드러나는,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채 홀로 떠난 삶의 쓸쓸함. 그 앞에서 장례지도사가 감당해야 하는 무게는 단순히 부패한 형체가 아니라, 그 형체에 새겨진 고독의 깊이일 것이다.


수업의 마지막에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를 보았다. 영화 속 장례는 장례식장이 아닌 집에서 치러졌다. 상을 차리고 곡소리가 울려 퍼지며, 조문객들이 드나드는 풍경.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오래전 할머니의 장례를 떠올렸다. 우리 집도 집을 상갓집으로 꾸려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모셨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죽음의 절차를 알게 되었고, 어린 마음에 그것이 무섭고 낯설면서도 하나의 질서로 기억되었다.


이제 나는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다. 마네킹을 한지로 감싸며,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영화 속 장례를 다시 바라본 지금의 나는 그 절차를 직접 배우는 사람이다. 언젠가 누군가의 마지막을 정성껏 책임질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죽음을 배운다는 것은 단지 기술을 익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곧 삶을 배우는 일이다. 삶은 결국 죽음으로 닿아 있고, 죽음은 또다시 남은 자들의 삶을 비춘다. 누군가의 마지막 앞에서 내가 어떤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그 물음을 안고 살아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이 길이 내게 주는 가장 큰 배움일 것이다.


나는 조금씩 알 것 같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얼굴을 끝까지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