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지도사 학원에 다니며 자격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요즘 내 검색창은 온통 장례 관련 단어들로 가득하다.
유튜브를 켜도, 포털사이트를 열어도 수시, 염습, 명정 같은 용어들이 줄줄이 뜬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논란이 된 영상을 하나 보게 되었다.
아주 유명한 영상은 아니었지만, 댓글창에는 혐오스럽다는 비판이 가득했다.
‘장례 수시’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그 영상은, 한 아버지의 장례 과정을 담고 있었다.
그 영상은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였다.
고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쳤다.
수시 과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고, 가족들이 울음을 삼키며 지켜보고 있었다.
고인은 생전에 마지막 유언으로
“셋째 딸이 사준 양복을 수의로 입혀 달라”고 남겼다고 했다.
그래서 그 양복을 그대로 입혀 드린 모습이 비춰졌다.
그런데 정말 충격적이었던 건, 그 얼굴이었다.
보통 이런 영상에서는 시신의 모습이 모자이크되거나 블러 처리되지만,
그 영상에는 아무런 가림도 없었다.
죽음이 필터 없이 드러나 있었다.
나는 잠시 화면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지 못했다.
나는 아직 죽은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영상으로 본 것도 이태원 참사 때였다.
그때 길바닥에 질식된 시신들이 늘어서 있던 장면이
실시간으로 퍼져나가던 순간, 나도 잠깐 그 영상을 봤다.
그때는 혐오스럽다는 감정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공부를 시작하고, 장례의 과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뒤라서일까.
그저 “아, 이게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구나.”
그렇게 느껴졌다.
영상을 끝까지 보다 보니,
고인의 살아생전 모습도 함께 담겨 있었다.
병상에 누워 있던 얼굴, 건강하던 시절의 웃는 얼굴,
그리고 영정 속 마지막 사진까지.
그 모든 장면이 이어지며 한 사람의 생이 시간 순으로 펼쳐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살아 있을 때의 얼굴과, 숨이 멎은 뒤의 얼굴은
분명 같은 사람인데도 전혀 달라 보였다.
생명이 빠져나간 몸은 낯설었다.
피부는 누렇게 떠 있었고,
입과 코는 솜으로 막혀 있었다.
삶이 빠져나간 자리를 탈지면이 대신 채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이상해 보였다.
마치 사람의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다.
엄마가 예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섯 분의 고인을 직접 마주했던 사람이라
엄마는 죽은 얼굴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나는 어려서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엄마는 종종 아빠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났을 때 마지막으로 보러 들어갔는데,
분명히 아빠가 맞는데 아빠가 아닌 것 같았다고 했다.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고,
눈도 입도 생전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빠가 아닌 사람 같았다”고,
엄마는 그때의 얼굴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막연히 짐작만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영상을 보고서야
엄마의 말이 이해됐다.
분명히 맞는데 아닌 것 같은 얼굴,
그게 어떤 표정인지, 어떤 느낌인지
처음으로 알 것 같았다.
그때 알았다.
사람의 얼굴을 사람답게 만드는 건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반짝이는 생기라는 걸.
숨이 멎고 온기가 빠져나가면
같은 얼굴도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엄마가 말했던 “분명히 맞는데 아닌 것 같은 얼굴”의 의미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그 생기, 그 반짝임이 얼마나 큰 건지 알았다.
그 영상을 보는 순간,
엄마의 말이 이해되던 그 찰나에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고인을 보았을 때
무섭거나 혐오스럽다는 감정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문득 떠올랐다.
언젠가는 나도
엄마의 마지막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 생각이 드는 순간,
가슴 한가운데가 무너져 내렸다.
분명히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고 있다.
이 일을 배우고 있으니까,
그때가 오면 나는 침착하게 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게 엄마라면,
나는 그 순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아니, 무너지고 말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내 사랑의 끝을 연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건 연습으로 될 일일까.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그날이 오면 나는 또 무너지고 말겠지.
죽음을 배운다는 건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을 배우는 일 같기도 하다.
그 마음이란 게, 이렇게 흔들리고 약한 것이라면
나는 과연 끝까지,
그 사랑의 마지막을 견딜 수 있을까.
그날이 아주, 아주 천천히 오기를.
그리고 내 마지막 날과
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