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지기까지

by 하린

사람이 제일 잔인하다.

그 말은 요즘 따라 자꾸 들린다.

TV를 켜면 뉴스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속이고, 때리고, 죽였다.

짐승은 배가 고파서 물고, 살아남기 위해 싸운다.

하지만 사람은 감정과 계산으로 싸운다.

이유를 만들어 잔인해진다.


가장 약한 잔인함부터 떠올려본다.

노인들을 속여 돈을 빼앗는 젊은 사람들.

경로당에 모인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건강에 좋다”는 말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제품을 팔고,

손주에게 주려고 아껴둔 돈을 빼앗는다.

그들은 칼을 들지 않는다. 대신 믿음을 이용한다.

그 믿음은 사람 사이의 마지막 끈인데,

사람은 그것조차도 돈으로 바꿔버린다.


조금 더 나아가면, 사랑했던 사람을 죽이는 일들이 있다.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사랑이 미움으로 뒤집히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 순간 인간은 짐승보다 더 무서워진다.

살았던 기억, 함께한 시간, 그 모든 게

칼날로 변해 상대의 몸에 꽂힌다.


그리고 그 끝에는, 더 이상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장면이 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그 사람은 자신을 열 번 넘게 찔러도 죽지 않아

끝내 자신의 목을 베었다고 했다.

그건 미쳤다고 말하기엔 너무 슬프고,

불쌍하다고 하기엔 너무 잔혹하다.

죽음조차 쉽게 오지 않는 그 장면 앞에서, 인간의 한계가 무너진다.


그런 일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그 사람은 그 선택을 하기까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마음으로 그 칼을 들었을까.

그 사람의 마음 구조는 우리와 같았을까.

아마도, 멀쩡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정신이 무너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으로 잔인해질 줄 아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나는 그런 죽음들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매만지고,

피로 얼룩진 몸을 닦아드리고,

세상이 외면한 죽음까지도 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그걸 보고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뒤돌아서면 잊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그 사람들을 보내드린 대가로 받은 돈으로

내 삶을 이어가야 한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먹고 살게 되는 건,

또 다른 잔인함이 아닐까.

죽음으로부터 삶을 이어가는 사람,

그건 어쩌면 가장 조용한 잔인함일지도 모른다.


감정들이 무뎌지기 전까지

나는 많이 흔들릴 것이다.

아무렇지 않아질 때까지.

얼마나 다치고, 충격받고, 무뎌지고,

다시 다치고,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고,

그렇게 또 다치고, 또 아물고,

그 과정을 반복하며 나는 굳어질 것이다.


언젠가 그 상처 위로 살이 완전히 굳는 날이 올까.

그때의 나는 단단한 사람일까,

아니면, 너무 많은 상처 위에 남은 또 다른 잔인함일까.

남는 건, 언제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