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목련화실

by 하린

목련화실.

이름은 화실이었지만, 사실은 공부방이었다.

정식 명칭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을 다들 목련화실이라고 불렀다.

선생님의 자택 지하실, 책상들이 주욱 놓여 있었고

아이들은 다닥다닥 붙어 앉아 학습지를 풀었다.

그 풍경이 지금도 선명하게 마음에 남아 있다.


집에서 꽤 멀었다.

버스를 타면 두 정거장쯤, 걸으면 삼사십 분.

그래도 학교에서 바로 걸어가면 20분이면 닿을 수 있었기에

수업이 끝나면 늘 그 길을 걸었다.


목련화실엔 최현자 선생님이 계셨다.

평생을 교직에 바치고 은퇴하신 뒤,

아이들을 다시 불러 모은 조용한 공부방.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화실이라는 이름답게

공부만 하는 곳은 아니었다.

한쪽 벽엔 물감이 놓여 있었고,

큰 종이와 연필, 붓이 늘 준비돼 있었다.


선생님은 틀린 문제를 다시 풀게 하셨고,

어려운 개념은 그림처럼 풀어 설명해주시곤 했다.

어떤 날은 공부하다가 지친 아이들을 전부 불러

작은 배구공을 던지며 놀게 해주시기도 했다.

그것도 공부였고, 가르침이었다.


그 시절, 나는 그림을 꽤 잘 그렸다.

선생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어른들은 내 그림을 보며

“꼭 달력에 나오는 그림 같다”라고 말했다.

목련화실에서 그렸던 그림들은

지금도 내 안에 어렴풋한 자존심처럼 남아 있다.


선생님은 조용하고 따뜻한 분이었다.

그 무렵 나는 아빠를 막 잃은 아이였고,

선생님은 우리 집 사정을 알고 계셨다.

불쌍하다는 말 대신 조용한 배려로,

가끔 내 손에 동전을 쥐여주시곤 했다.


“학교 앞에 가서 핫도그 하나 사 먹어라.”

서준이와 나에게만 그렇게 해주셨다.

그 시절, 그 말투와 그 손길이 지금도 그립다.


중학생이 되면서 목련화실과 작별했다.

중학생은 받지 않는 공부방이었기에

연락도 자연스럽게 끊겼다.


그땐 몰랐다.

그 시간이 그렇게 따뜻했고,

그분이 그렇게 고마운 존재였다는 걸.


지금은 선생님이 계시던 동네를 지날 일도 없고,

살아계신지, 어디서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문득문득, 아주 조용히 떠오른다.

목련화실. 그리고, 최현자 선생님.


그 목소리와 그 손길,

그 이름 석 자가 남긴 온기가

지금도 내 마음 한편에서 피어난다.

마치 봄이 오면 다시 피는

하얀 목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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