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첫 번째 상사, 언니였던 사람

by 하린

회사라는 공간은 낯설었다.

여고를 나오고 바로 구미의 한 회사에 입사한 열아홉의 나는,

대기업이라는 말에 눌리고, 어른들 사이에 끼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작아졌다.


그때 내 앞에 지안 선배님이 있었다.

처음 본 지안 선배님의 첫인상은

사랑 많이 받는 예쁜 아가씨 같았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대신 나서줄 것 같은 사람.

어디에 있어도 보호받을 것 같은 사람.

늘 좋은 냄새가 났고, 피부는 뽀얗고, 말랐고, 조용하고 얌전한 사람이었다.

말보다 행동으로 가르치는 사람이었고,

처음엔 그냥 ‘업무상 나를 맡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선배님은 어느새 내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시간을 보내야 할 휴일에도,

내 자취방에 찾아와 시간을 나눠주던 사람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진심으로, 이 사람이 내 친언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정이 너덜너덜하던 날,

전화로 울면서 마음을 쏟아낸 적도 있다.

그런 나를 선배님은 말없이 들어주었다.


지안 선배님 외에도 가까이 지냈던 무리가 있었다.

하윤 언니, 후배 서연이, 사랑이.

우리 다섯 명은 언제나 붙어 다녔고,

그 무리에서 사번이 제일 높던 선배님은 늘 내 빽 같았다.


그러다 내가 파주로 발령이 났다.

서로 울고, 아쉬워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땐 내가 조금 더 큰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줄 알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따뜻했던 공간이 이미 가장 큰 세상이었다.


파주에서 스물다섯이 되던 겨울,

내 삶은 처음으로 무너졌다.

그땐 몰랐지만, 그게 우울증이었다.

출근해야 할 날, 사원증과 지갑이 들어있는 가방만 들고서 무단결근을 하고,

통근버스 대신 대구행 기차를 탔다.


내가 무단결근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구미 동료들이,

지안 선배님, 하윤 언니, 서연이, 사랑이가

곧장 내 고향집으로 찾아왔다.

사실, 그때는 그들이 반갑지 않았다.

숨고 싶고, 혼자 있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지안 선배님이 내 안부가 걱정되어

동생 같은 나를 향해 먼저 “가보자” 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래서 고맙고, 따뜻하고, 눈물도 난다.

이게 어떤 감정인지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 시절이 그립고,

그 사람의 품이 그립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을 선배님.

우리는 이제 연락도 뜸해졌고,

서로의 삶에 바빠 목소리를 나누진 않지만,


가끔씩, 문득, 정말 문득—

당신이 그립습니다.

내 첫 상사, 그리고 언니였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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