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진짜 수박이 자랐다.

by 하린

어느 여름날이었다.

나랑 유건이 오빠, 그리고 서준이.

셋이서 수박을 먹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야, 수박씨 땅에 심으면 진짜 수박 자라나?”


그때 학교에서 씨앗 심는 걸 배웠었고,

수박은 맛있었고,

입에 수박씨는 자꾸 걸려 뱉어졌고,

우리는 심심했다.


그래서 우리는

수박씨를 물이 담긴 큰 바가지에 뱉어두었다.

씨앗은 심기 전에 물에 불려야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는

옥상에 아무것도 심겨 있지 않은 큰 고무 화분에

그걸 정성스레 심었다.

그냥 해보는 거였다.

진짜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자라더라.


싹이 트고, 덩굴이 뻗고,

수박 같은 게 맺히더니

점점점 커졌다.

점점… 진짜 수박처럼.


우리는 그 앞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감탄했다.


“야, 진짜야. 진짜 자란다!!”


수박이 커지기 시작하자,

우리는 날마다 외갓집으로 전화를 걸어

유건이 오빠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오빠가 말했다.


“야, 이거 나 없을 때 절대 먹지 마래이.

갈라 보는 것도 안 된다. 알았제?

우리 셋이 같이 먹어야 된대이.”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약속 같았다.

셋만의 비밀이자, 수박에 대한 룰.


그런데 어느 날,

큰삼촌이 옥상에 올라왔다가

그 수박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형수요~ 이거 누가 심었는교?”


“아들이~ 우리 조카 와가꼬 놀다가

즈그끼리 심었는데 이마이 자랐다 아이가~”


수박은 어른 주먹 두 개만큼이나 컸다.

삼촌은 이내 말했다.


“이거 이제 다 자랐다.

이제 더 두면 썩는다.

지금 갈라보자.”


우리는 순간 당황했다.

“아… 오빠야 없는데…”

입 밖으로 내진 못했지만

마음속에선 줄줄 새고 있었다.


하지만 어릴 적 수박농사를 지으며 자란

삼촌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고,

어른 앞에서 끝까지 고집부릴 용기도 없었다.


결국 수박은 그 자리에서 갈라졌다.


안은 아직 덜 익은 것 같았고,

물컹했고, 밍밍했고,

정작 맛은 없었다.


그래도 삼촌은

“야, 니들 그냥 뱉은 씨로 진짜 심은 거 맞나?

이거 대단한 거다!” 하며

우리를 한껏 칭찬해 줬다.


그날,

우리는 수박을 조금씩 나눠 먹었다.


그런데 나는

마냥 신나진 않았다.

마음 한구석이 자꾸만 찔렸다.


“오빠야가 절대 먹지 마라 캤는데…”


그 말이 귀에 계속 맴돌았다.

같이 갈라보자고 했던 유건이 오빠는 없었고,

수박은 이미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수박은 정말 자라긴 했지만

우리 약속은 그 안에서 반쯤 깨진 채로 있었다.


그게 조금,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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