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기 간에도 급이 있다. 덜 힘든 시기, 더 힘든 시기, 힘겹고 고통스러운 시기. 덜 힘든 시기와 더 힘든 시기도 충분히 힘들었다 자신할 수 있으나 그중 단연 고통스러운 시기가 있다. 물론 똑같은 사건도 개인마다 기질마다 환경마다 그 강도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게다가 나에게 앞으로 더한 시련이 닥치지 않을거란 보장도 없기에 지금 이 글은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보잘 것 없는 한 개인의 현재시점 생각낙서일 뿐이다.
나에게서 최고난도의 시련은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짝으로부터. 사실 우리의 관계는 연애 때부터 이미 삐그덕거렸다. 기질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다른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버거웠다. 부모님의 관계가 이상적이었던 나는 어려서부터 '부부관계가 모든 관계의 시작'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따라서 연애 때부터 들쭉날쭉한 우리의 관계는 나의 눈물을 쏙 빼놓기 일쑤였고 결혼 이후 최고의 난제가 되어버렸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배우자와의 관계라면 나는 정말이지 그 누구보다 불행한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구현된 나의 세계관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나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부모님의 가르침은 일리 있었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핵심이 빠져 있었다. 부부관계보다 앞서야 할 관계가 있었다. 나와 나의 관계, 그리고 나와 하나님의 관계였다. 나와 나의 관계는 내가 나를 이해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짐으로써 확립할 수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가늠할 때 비로소 내가 만능의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임을 깨닫는다. 그것은 자기비하의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물렁물렁 유연하게 만드는 과정이자 자유를 체험해가는 단계이다. 건전하고 건강한 세계관을 확보하는 때 자기아집을 탈피할 수 있고 나를 바라보듯 남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내가 잘하는 이것을 저 사람은 서투르고 어색해 하는구나. 왜이지? 내가 모르는 이것을 저 사람은 아는구나. 나만 참고 산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저 사람도 참 많이 참고 살았네. 등등... 이런 생각의 조가리들이 은연 중 스쳐 지나가고 점점 그 간격을 좁혀 들어온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 앞선 관계, 가장 처음의 관계, 가장 처음이어야 하는 관계가 있다.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무신론자들은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 또는 나와 나의 관계는 어리석고 유약한 존재 간에 맺는 관계다. 자주 상처나고 때론 고꾸라진다. 서로에게 기대하고 싶지 않아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면서 동시에 그 기대는 채워지지 않는다. 어떻게 채워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시다. 기억하는가 영화 <<이집트 왕자>>(1998)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출3:14)라 소개하셨다. 하나님은 모세가 겁에 질려, 이스라엘 민족을 파라오의 손에서 구원해내지 못할 것이라 말할 때 반복적으로 당신을 그와 같이 소개하셨다. 물론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처럼 하나님의 기적이 일상에 일어나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불가능하다 철썩같이 믿어왔던 것들을 거짓말같이 회복시키셨다. 실상 다시 보면 그것은 일상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과 다름 없다.(https://youtu.be/zgDXn-ENn3c)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해 나가는가.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 이웃을 사랑하고, 이런 정석과 같은 이야기들보다도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실로 평범하다. 일상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분의 세심한 배려를 깨닫는 것이다. 가령 일상이 되어 오시는 하나님은 내가 버티지도 못하고 질질 끌려간다 느끼던 때 부모님이 되어 오셨다. 나를 생각하며 우시던 아빠로, 내 앞에서 결코 나의 편 들지 않고 남편을 두둔하던 엄마로 오셨다. 아빠가 아니었으면 나는 공감받지 못했을 것이고 엄마가 아니었다면 나는 현재 남편에게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일상이 되어 오시는 하나님은 나에게 이성적이고 냉철한 상담가로 오셨다. 오랜 시간 상담과 교육에 몸담아 오신 선생님은 그간의 경험과 데이터로 나를 바라보셨다. 덕분에 나는 오래도록 채찍질 당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으나 그로 인해 더 혹독히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선생님도 나중에 가서는 우리 부부의 관계가 무언가 특수하다는 사실을 눈치 채신 것도 같았다. 이제 우리 부부는 부부의 문제에 집중하기보다 각자가 더 나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는 데 집중하여 상담을 받는다. 상대방을 손가락질하기보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가꾸는 데 시간을 들이려 노력한다.
일상이 되어 오시는 하나님은 나에게 운동이 되어 오셨다. 전에 없던 운동을 우연히 시작했는데 이전의 헬스나 요가와는 달리 썩 내게 잘 맞았다. 박사까지 공부를 줄곧 해온 탓에 두통과 목과 어깨의 통증이 끊이질 않는데 수영을 단 몇 주 했는데도 몸이 이완되며 통증도 사라졌다. 지압이나 마사지도 시원하지만 효과로 따지면 몸의 컨디션 지속이나 들이는 비용 측면에서 가성비나 가심비나 여러 모로 수영이 효과적이다. 몸 따라 마음도 가벼워지고 순환되니 참으로 기특한 운동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로 잠정 중단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또한 하나님은 나에게 영감으로, 심지어 티비 프로그램으로도 오셨다. 사실 핵심은 여기에 있으나 워낙 개인의 경험과 깨달음에 가까워 공감을 받기는 힘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에 대하여는 나중에 특별한 기회가 닿으면 쓰겠다.
나처럼 일상이 되어 오시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여기 또 있다. 요즘 시간을 거슬러 이분의 글을 읽는데 천연덕스럽게도 나와 비슷한 점이 참으로 많다는 생각을 한다.
"신부님을 뵙고 긴 위로의 말씀을 들었으나 자식도 낳아보지 않은 분이 내 마음을 어찌 알까 싶어 그저 괴로운 마음으로 경청했다. 그러다가 탁자 위에 놓인 백자 필통이 눈에 띄었다. 거기 쓰인 <밥이 되어라>라는 글귀 때문이었다. 신부님이 손수 쓰신 건지, 아니면 어떤 주교님이나 추기경님이 쓰신 건지 그건 분명치 않았다.
누가 썼건 실상 그건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밥이 되어라, 밥이 되어라'를 입 속으로 되뇌면서 나는 분도수녀원에서 맡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 냄새를 떠올렸고, 어쩌면 주님이 그때 나에게 밥이 되어 오시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났다. 그때 나는 몇 날 며칠을 밤이나 낮이나 주님을 찾아 대들고 몸부림쳤었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 한 말씀만 하시라'고 애걸복걸도 해보았다. 그러나 주님은 끝내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어쩌면 나직하고 그윽하게 뭐라고 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늦게 난 철처럼 슬며시 왔다.
그래, 분명히 뭐라고 그러셨을 거야. 다만 내 귀가 독선과 아집으로 꽉 막혀 못 알아들었을 뿐인 것을. 하도 답답해서 몸소 밥이 되어 찾아오셨던 거야. 우선 먹고 살아라 하는 응답으로. 그렇지 않고서 그 지경에서 밥냄새와 밥맛이 그럿게 감미로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박완서 2012:106-107, <<한 말씀만 하소서>>, 세계사.)
"밑줄 친 그 책의 출판 연도를 보면서 역시나 하고 내 생애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떠올렸다. 심한 불면증과 곧 죽을 것 같기도 하고, 죽고 싶기도 한 고통과, 그걸 아무도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잘난 척 때문에 심신이 마모돼갈 때였다. 그래도 그때가 가장 살고 싶어한 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때 열심히 매달린 게 하느님이었으니까. 그전에 갖게 된 신앙 때문에 그런 극한상황에 매달릴 데가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으나, 아무리 매달려도 잡히지 않는 게 하느님이었다. 이 고통이 무슨 뜻이냐고 피 토하게 외쳐도 대답 없는 게 신이었다. (...) 지금 나는 보통 노인과 다름없이 내 건강이나 우선적으로 챙기며, 내 속으로 낳은 자식들과 그들이 짝을 만나 새롭게 만든 가족들의 기쁜 일을 반기고 어려움을 나누며 정상적으로 평범하게 살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소리 없이 나를 스쳐 간 건 시간이었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줬다. 그렇다면 시간이야말로 신이 아니었을까."(박완서 2011:154-155, <<못 가본 길이 더 아릅답다>>, 현대문학.)
꾸벅꾸벅 듬성듬성 일상이 되어 오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다 문득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떠올랐다. 일상에 오신 예수님, 실제의 일상으로 오신 예수님 말이다. 일상을 사시고 죽으시고, 또 부활하신 예수님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