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아는 그림, 익숙지 않은 본질
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허름한 노인이 가게에 들어왔다.
"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겠습니까?"
"네, 그러시죠."
노인은 한 쪽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 점심으로 싸온 투박한 빵 한 덩어리를 꺼냈다. 그리고 간절히 식전기도를 드렸다. 그 기도의 모습이 너무나 진지하고 진실해보여, 자리를 내준 주인은 가지고 있던 사진기로 그의 모습을 찍었다.
"Grace"(은혜)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본래 흑백사진이다. 1918년 찍힌 흑백의 사진에 채색을 입혔다.
우리가 익히 아는 그림, <<Grace>>(1918)의 배경이다. 질겨 보이는 빵 한 덩이, 삶의 무게가 보이는 듯 흰 머리와 무성한 수염, 이마와 눈가의 숱한 주름, 지친 듯 안경을 벗고 모은 두 손에 기대어 기도드리는 그의 표정, 특별할 것 없지만 깨끗하고 정돈된 체크무늬 코트.
매일의 반복되는 일상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는 마음의 토양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반복은 얄궂다. 좋은 것은 더 이상 좋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당연한 일로 바꾸어버리고 나쁜 일은 한 번의 예외 없이 언제나 아프고 고통스럽게 몰아간다. 기쁨은 무뎌져도 슬픔은 가중된다. 초등학교 수학에서 빼기와 빼기는 만나 더하기가 되고 더하기와 더하기는 더 큰 수를 만드는데, 왜 현실은 그렇지가 않을까?
실상의 문제는 나에게 있음을 안다. 나는 매사에 시니컬하고 비판적으로 반응하는 데 가히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다. 뻔뻔한 변명을 보태자면, 기질의 탓도 있지만 결국 사람의 속에 뭐 좋은게 있을까 싶다. 기질과 본능을 거스르는 의지적인 노력이 필수이고 그것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내 작은 경험상 '받아들이기'는 처음에만 고통스럽고 이후로는 꽤 편안하다. 가끔은 자유롭기까지 하다.
그림을 보며 생각했다.
이 그림이 나에게 익숙하듯 내 마음도 그랬으면 좋겠다. 좋은 것은 당연한 줄 알고 평범한 것은 없는 것처럼 여기며 나쁜 것은 오목조목 잘도 골라내는 이 (빌어먹을) 기질이 썰물처럼 빠지고, 좋은 것에 기뻐하고 평범한 것에 즐거워하며 나쁜 것에 분노하고 슬퍼할 줄 아는, 그런 어린 아이 같은 성정을 지니게 된다면 참으로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력해야지. 하다 안 되면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