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 사람들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집 밖으로 나오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나와 남편은 별다른 경각심을 느끼지 못하고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으며 비슷한 일상을 보냈다. 그러다 한 해가 지날 무렵 남편의 직장 내 동선이 확진자와 겹치는 바람에 타율적 자가격리를 하게 되었다. 음성이었음에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두 주의 격리기간을 가졌다. 남편이 격리를 하다 보니 얼떨결에 나도 같이 격리란 걸 하게 되었다. 사실 남편이 화장실 딸린 방을 사용하면 나까지 칩거하지 않아도 되지만 특별히 중요한 일도 없고 집이라도 편히 공유하자는 마음에서 동참했다.
자가격리를 시작하기 전에는 길어야 사나흘 외출하지 않을 뿐이었다. 두 주간 바깥공기를 마시지 않으려니 좀이 쑤셨다. 남편과 강아지가 있어 그나마 덜 심심했을까. 강아지는 평소 매일 산책을 나가다가 두 주를 못 가니 말미에 살짝 갑갑해했다. 그런데도 보호자와 떨어지지 않아 좋은지 무난히 버텨주는 것이 신통하고 기특했다. 남편은 누구보다 잘 지냈다. 그는 하루종일 서재에 들어가 책을 읽었다. 가끔 무언가에 소위 꽂히면 몇 주에서 몇 달간 그 세계에 빠져 지내는 편이라 이번에도 그러는구나 싶었다. 꽁냥꽁냥 무언가를 하는 모습에 나의 무료함까지도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일주일쯤 지나자 밤에 잠이 안 올 때면 해방 이후의 자유로운 삶을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맛있는 것도 사먹고 카페에 가서 코코아도 마시고 서점에서 책도 읽고 이참에 운동도 좀 시작할까 등 평소에 눈길 주지 않던 일들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했다. 가슴이 다 설레었다. 어쩜 그리 하나하나 빠짐 없이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만 같은지!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막상 일상이 시작되면 예전과 똑같겠지?"
정말 그럴 것 같았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는 싶어도 차가운 바람을 쐬거나 뜨거운 햇볕을 견디긴 싫었다. 카페에서 달달한 음료를 마시고는 싶어도 취식 내내 마스크로 눈치보긴 싫었다. 이런저런 불만거리가 잡초처럼 자라날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비단 현재의 상황뿐 아니라 짧은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아도 매번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무언가를 원하고 바라고 마침내 이루어져도 찰나의 기쁨을 누릴 뿐 나는 또 그 이면의 작디작은 불평거리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사실 눈에 불을 켜고 찾으려 하지 않아도 어느새 눈에 띄던 그 벼룩같은 불편의 거리들은 어느새 급성으로 살을 찌우고는 했다. 결국 그 다음의 대책이 필요하고 계산이 필요했다. 벼룩을 성공적으로 잡을 방법이 마련되어야 했다. 벼룩은 벼룩일 뿐 그저 잡으면 그만인데 어쩌다 벼룩이 코끼리 되어버린 셈이다.
이럴 바에야 엉뚱한 생각일랑 접어두고 이제 하루하루 살아야지 마음 먹으며 슬그머니 상상의 나래를 거둬들였다. 오늘 하루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 잠이 들 때까지 오늘의 불만에서 오늘의 감사로, 어제의 후회에서 오늘의 기회로, 내일의 불안에서 오늘의 누림으로 마음을 고쳐먹자고 결심했다. 최면을 거는 식의 요행이 아닌 보다 실질적인 데 집중하려는 시도라고 보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나의 이성이 과도하게 날을 세우고 나의 감정이 들쭉날쭉 요동을 치던 때는 대개 본질이 아닌 부수적인 것들에 발단이 있었다. 본질을 놓치다 보니 틈에 균열이 오고 그것이 반복되어 결국 균형이 틀어지면서 파도 치는 감정을 가지게 되는 건 아닐까. 역시 본질은 중요하다.
쉽게 말해 이런 식이다. 나는 외출도 못하고 집에만 갇혀있는 신세다. 이것은 내가 자가격리라는 하나의 결핍만을 고려했을 때의 얘기다. 그 결론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나는 비교할 것도 없이 심심하고 지루한 보름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자 이제 나머지 이야기들을 꺼내보자. 나는 추운 겨울 따뜻한 집에서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할 수 있다. 도톰한 이불을 덮고 충분한 숙면을 취할 수 있다. 남편과 강아지가 있어 덩그러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혹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면 세 개의 방 중 하나를 골라잡아 문고리만 돌리면 된다.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도 있다. 심지어 넷플릭스도 깔려 있어 볼 것은 차고 넘친다. 유튜브까지 있으니 말 다 했다. 배달 어플로 장을 볼 수 있고 먹고 싶은 메뉴를 얼마든지 시킬 수 있다. 카페도 배달이 가능하니 내가 좋아하는 초코음료를 매일같이 마실 수 있다. 운동이 필요할 때면 맨손체조를 하거나 집에 설치된 간이 자전거를 탈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건강하다. 남편도 건강하다. 심지어 강아지까지도 건강하다. 이보다 더한 감사가 있을까!
내가 누리지 못하는 소수의 것보다 누리는 다수의 것을 세어보고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부요한 자다. 그는 결핍이 또 다른 결핍을 낳는다는 것과 감사가 또 다른 감사를 배태한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지금 긍정의 힘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인 신념을 갖자는 말이 아니다. 그저 선한 것보다 악한 것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는 경향이 있으니 조심하고 견제할 필요가 있겠다는 정도의 말을 하고싶다. 어제에 머물지 않고 내일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저 오늘을 사는 삶, 잠시 슬퍼하고 화가 나도 언제든 다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단련된 동심을 키워낸 삶, 과정은 어려워도 결국 쟁취해낸 그런 단순하고 평범한 삶에 무한한 동경을 느낀다.
자가격리가 시작되고 몇 일 후 남편과 해피가 창밖을 바라본다. 그냥 보는 거라지만 어쩐지 동경의 눈빛이 느껴진다.
지난 겨울 그나마 집이 따뜻해 다행이었다. 따순 바닥에서 이불 차고 자는 댕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