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집주인에서 세입자로
23평에서 10평으로
인천에서 서울로
그렇게 점점 더 집순이가 되어
지난 날을 빠듯하게 살다가 이제서야 끄적여보는 브런치 기록입니다.
안녕, 너 되게 오랜만인데
그래도 앞으로 더 보지는 말자
다시금 집꾸미기에 빠져서 월세집을 꾸미느라 정신이 없던 이사 주간, 그 첫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폭신한 오리털 침구를 정리하던 찰나 침대 끝머리에서 반질반질 천천히 움직이는 일명 '바선생'을 보고서 나는 기겁을 했고, 첫 집들이에 초대되어 온 남자친구는 나와 같이 어찌할 바를 몰라서 두 어른이 발만 동동구르다가 결국 이불에 약간의 흔적(?) 을 남기고서는 바선생을 퇴치했다.
그리고 나는 그 날 밤, 어디에서인가 나올지도 모르는 바선생의 위협을 느끼며 잠을 한 숨도 못이루고 자취고수 남자친구에게 '도대체 바 선생을 박멸하려면 어떻게 해야해?' 라고 물으며 '마툴키' 제품을 추천받았다.
그 '바선생' 을 본 이후로 내 침구는 소독에 소독을 더해 빨래만 세 번을 거쳤고, 내 집 온 구멍이란 구멍과 벽 틈 사이에는 바선생 퇴치약과 마툴키를 온 곳에 발랐다.
그리고 그 이후,
아직까지 바선생은 볼 수 없었다.
나 시장 좋아하네
언제부터 집순이 DNA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나름 핫플레이스에 이사오고서 좋은 건, 어느 곳을 나가도 관광지 그리고 큰 시장이 있다는 것이다. 잠시 바람쐬러 시장을 돌아도 좋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남들은 줄 서는 카페에 웨이팅없이 다녀올 수 있다는 것도 핫플레이스 동네에 사는 아주 큰 장점이다.
이사 오고 나의 루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장에 가서 물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수 많은 관광객들 사이에 제철 나물은 얼마나 하는지? 초입의 야채가게와 가격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어느 해산물이 싱싱한지? 어느 상인분이 제일 친절한지 등등을 살피는게 꽤 쏠쏠한 재미를 준다.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스콘 가게를 주말마다 방문해서 한 덩이의 무화과 스콘을 사와서 얼려 먹는 재미도 좋다.
시장을 오고가면 그 달의 제철재료가 무엇인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지난 달에는 오이 한 개가 1,500원이 훌쩍 넘더니 봄이 오는 3월이 되어서야 1,000원이 되었고, 제철 냉이와 쑥은 그 값이 시장 앞이나 시장 뒤에 가게모두 동결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야!?
처음으로 이사를 오고 간과했다는 것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노후화'
집의 구조와 상태가 노후화 된 집 치고는 괜찮아서 전혀 살피지 못했던 바로 '보일러' 와 '곰팡이'
노후화 된 보일러의 문제는 효율이 아주 나쁘기 때문에 도시가스 요금이 상당히 좋지 않다. 23평 집이 2만원 언저리였는데 10평도 채 되지 않는 집이 6만원에서 8만원을 오간다. 심지어 아주 춥게 있었는데도 말이다. 문제는 내 집이 아니기 때문에 보일러 교체는 꿈도 못꾼다. 창문 쪽에는 알 수 없는 곰팡이들이 피기 시작했다. 나는 자주 더 환기를 했고, 창문에 습기가 생기지 않도록 스티커도 부착해주었고, 흰 벽지에 얼룩진 곰팡이 제거를 위해 매일매일 닦아준다.
그래,
이 집 너무 오래되도 오래되었는데 몰랐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나는 서울살이에 다시금 적응해갔고, 인천 나의 집은 텅텅비워둔 채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꽃피는 봄이 살짝 올까 말까를 망설이는 지금 나는 긴긴 겨울을 비워둔 집에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