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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른 가면을 쓴다

by 오흔

사람이 참 단단해보여요,

카리스마도 있으시구요!


몇일 전,

옆 부서의 팀장과 함께 회식을 했다.


나보다 6살이나 어리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녀의 카리스마는 왠만한 30대, 40대를 이긴다. 그녀는 나를 무서워하지만 나는 그녀를 무서워한다. 그런 그녀의 칭찬은 나를 참으로 멋쩍게 만들었다. 칭찬은 칭찬으로 화답한다. 집에 오는 길에 그녀의 칭찬을 되새겨보니 정말 진심으로 .... 멋쩍게 느껴진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아수라백작이 되어간다.

지킬 앤 하이드일까?



마치 회사에서는 다른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즉흥적인 기분파였던 나는 회사에서 계획표 없이는 움직이지도 않는다.


인생의 To-do List(해야할 일의 목록) 는 없으면서 회사에서는 프로젝트별로 기본 3-4개의 To-do List (해야할 일의 목록) 을 갖고 있다. 즉흥보다는 철저한 계획안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인다. 과거에는 '도전'하지 않는 '혁신'없는 조직을 비난했지만 지금은 그 '도전'이 내 일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나도 조용히 내 일을 거들 뿐, 주목받고 싶지 않은 고인물이 되어 간다.


내 손으로는 만져본 적도 없는 10억, 20억대 예산을 척척 쓰고서는 회계 감사에 맞춰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나를 보면 기가찬다. 1원 단위부터 10원 단위까지 안맞는 금액을 색출해 낼 때면 나도 내 자신이 어디서 이런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 지 궁금하다. 돈 계산에는 잼병이라 세일 할인율 계산하는 것도 버퍼링이 걸린다.

싸움할 때마다 눈물부터 팡-하고 터지는 사람이 회사에서는 눈하나 깜짝도 안하고 할 말을 다한다. 지금 이 싸움에서 지면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 팀 전체가 피해를 보기에 강해지는 척을 할 뿐이다.


말하고 주목받기를 좋아하면서 회사에서는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조용히 지낸다. 그게 제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지만 팀원들의 고충을 듣고, 상사들의 요구를 듣다보면 '말' 보다는 '귀'가 자동적으로 열리게 된다. 못다한 말은 남자친구와 가족을 만나면 술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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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어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죄책감이 든다


팀의 막내와 10살 차이가 난다. 나도 이제 어디가서 꿀리지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왠만한 모임이나 자리에서 내 나이는 '앞'에 있다. 언니 아니면 누나. 팀 막내는 막내같다. 10살 차이가 나서 그런지 뭘 해도 늘 반짝이는 것 같다. 그런 막내는 늘 나에게 사석에서 애교를 부리곤 한다. 그리고 푸념처럼 나를 부러워한다. 나는 그 부러움이 고마우면서도 무겁고, 죄책감이 든다. 그리고 더더욱이 회사 밖에서 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참으로 엥간히 노력하게 된다.


팀원들의 뒤치닥거리를 해주다가 새벽까지 야근을 했던 날, 나는 팀원들이 미워서 일이 벅차서 그냥 힘이 들어서 엄마가 보고 싶어서 뿌엥- 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늘 상사와 타 팀과 언쟁이 있는 날이면 단어 하나에 꽂혀서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일까?' 자책하며 화장실에서 풀죽은 기분은 스스로 달래기 위해 1평 남짓한 공간에서 잠시 멍을 때리기도 한다. 자기계발 대신에 애니메이션 보면서 맥주 한 잔에 세상 시름 다 잊는 게 나의 낙이 된 지 오래다. 회식을 가면 나도 더치페이를 하고 싶다. 당연히 연봉은 올랐지만, 오른 연봉만큼 물가도 올랐고, 물가가 오르면서 내 월급을 뺏아가는 지출들도 점차 늘었다. 그래도 팀장이니까 더치페이는 없어보인다. 그래서 스르륵 - 자연스럽게 회식은 법인카드가 아니면 하지 않는다.




정말 눈떠보니 어쩌다 어른이 된 것인데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환경이 사람을 변하게 할 뿐


나의 생활을 두 갈래로 나눠져 있다.

7년차 욕심많은 팀장 vs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서른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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