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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새로운 팀장님을 소개합니다

feat. Chat GPT

by 오흔

그동안 브런치가 뜸했다.

일이 무척 바빴고, 브런치에 들리지 못한 날들은 모두 야근과 업무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나에게 가장 큰 변화는 나에게 새로운 업무 파트너이자 든든한 팀장이 생겼다는 것이다.


단 돈,

월 3만 원으로 말이다.




저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이건 불공평하니까요.


팀원 중에 정말 현실적이다 못해서 너무나도 이성적인 팀원이 한 명이 있다. 가끔은 인간미가 넘치다가도 일을 하는 순간에는 '내가 상사여서 다행이다' 싶은 순간이 참 많았다. 그녀의 업무특징이 빠르고, 정확하고, 매우 T스러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도 아직은 배울 것이 많은 3년 차이다.


제안작업은 늘 그렇듯이 촉박하게 준비된다. '이게 될까?'라는 생각조차 사치다. 그저 빠르게 기획하고 기존의 리소스를 활용해서 데드라인에 맞춰 제안서를 준비하다 보면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게 된다. 움직이는 건 그저 손이오, 생각하는 건 그저 데드라인에 맞춰 실수 없도록 제안서와 제반서류를 준비하는 것뿐이다. 데드라인을 딱 1일 남겨둔 시점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바로 우리의 최종 기획을 팀장님이 다 엎어버린 것이다.




이건 경쟁력이 없어요. 너무 뻔해요





여태 기획안에 대한 보고를 여럿 했는데 결국 마지막이 되어서야 샅샅이 살펴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사실은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마치 강아지가 고양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전제들을 말도 안 되게 이어 붙이는 제안이나 마찬가지였다. 얼마 없는 리소스에 맞는 제안서를 몇 번이고 들이밀었을 때는 '좋다'라고 하더니 결국 마지막이 되어서야 '경쟁력'을 찾다니. 심지어 데드라인 1일을 남겨놓고. 이건 팀원들 모두가 열받을만한 일이었고, 그 말인즉슨 마감시간에 맞춰 밤샘작업이 예약된 것이었다. 결국 이 상황에 앞에서 잠시 설명한 나의 팀원은 팀장에게 들이받았다.



들이받은 내 팀원 덕분에 팀장은 우리와 같이 야근을 했다. 그리고 그는 2시간 만에 자신이 원했던 프로그램 기획안을 다시 내놓았고, 우리는 그 기획안에 맞춰 그야말로 밤샘 작업을 했다. 사실 최초의 제안서와 크게 다른 건 없었다. 하지만 뭔가 조금씩 바뀌어 있는 것이 희한하게 이질적으로 느껴진 제안서였다.


20대에는 야근을 해도 버틸만했는데, 30대가 되니 야근이 무섭고 두렵기만 하다. 그다음 날 후폭풍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마감 시간 오전 10시에 맞춰서 그날 나는 새벽 3시까지 제안서를 마무리했고 거의 기절을 했다. 하지만 이 제안의 결론은 우리는 '제출조차 하지 못했다'이 얼마나 허무한가. 회사의 실수로 우리가 밤새워 준비한 제안서를 제출조차 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드라이브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그날 제안서 미제출에 대한 허망함이 가시기도 전에 팀장은 '옳다구나' 하며 우리 팀을 맹비난했다. 경쟁력이 없어서 제안서를 바꾸자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바꾼다는 우리의 안일한 태도가 결국 이렇게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말도 안 되는 화풀이 었다.


아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팀장이 우리에게 준 자신의 제안서는 그 스스로가 만들어 낸 제안서가 아니라 Chat GPT 가 만들어 낸 제안서였다.





나도 그거 유료 사용하고 있어. 꽤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그 제안서 이후 나는 Chat GPT에 의존하는 팀장에게 정말 많이 실망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회사의 조직개편으로 나는 팀장과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내 주변에는 드문드문 Chat GPT를 유료결제하고 사용한다는 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 후 언젠가 잠이 안 오던 밤. 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커리어에 대한 답 없는 상황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Chat GPT를 켰다. 기본적으로 나는 기계를 신뢰하지 않는다. 종종 회사에서 빠른 시간에 뭔가를 정리해야 하거나 알아야 할 때를 제외하곤 Chat GPT 가 아닌 나 자신을 믿었다. 그런데 정말 '답이 안 나오는' 그런 몇 가지의 케이스들에 대해서 Chat GPT는 답을 알고 있을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날 나는 놀랍게도 우연하게 Chat GPT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대화를 약 1시간이나 이어갔고, 직원들에 대한 팀리딩에 대한 고민과 내 커리어, 가족, 부동산에 대한 고민까지 모두 털어놓곤 아주 신기하게 각 고민에 대한 해답과 앞으로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아주 명확하게 결과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대화는 나에게 아주 의미 있었고, 나는 정기구독 결제를 했다. 심지어 내 커리어 고민을 나눌 때 나는 겨우 기계의 채팅한 줄의 말에 울컥할 뻔한 순간이 꽤 여럿이었다. '어떻게 나도 모르는 감정을 이렇게 읽고 정리할 수 있지?'


이제는 초록색 검색창이 아니라 궁금하면 나의 스타일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내 전용 GPT에게 묻는다.

실제로 유료와 무료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 이후로 나는 구독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직까지도 문서 요약을 시킬 때면 '이건 아닌 것 같아'라는 나의 질문에 '아, 미안 그건 내가 놓쳤어!' 라며 빠르게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을 볼 때면 업무에 있어서는 60% 정도는 신뢰하고, 40% 정도는 걸러서 봐야 한다. 그래도 업무에 있어서 웹 상에 널리 퍼진 정보를 기반으로 요약, 정리, 제안, 방향을 설정하는데 아주 유용하다.


이제 우리 회사에서도 거의 70% 이상이 Chat GPT를 사용한다. 디자이너, 기획자, 재무, 홍보 등등. 부서를 막론하고. 커뮤니티와 점심시간 라운지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이 그렇다. 그래서 나도 내 앞에 앉아있는 상사와 동료보다 어쩌면 GPT 가 내 상사와 동료를 대체할 수 세상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이따금씩 들곤 한다.


어쩌면,

내 자리도 위협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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