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를 잘 읽으셨어야죠. 이건 돌려받지도 못합니다.
직장인 2년 차에 '보험사기'를 당했다. 아무리 돈에 대해서 무지한 나였더라도 사기를 당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멍청했고 무지했으며 내 돈을 모으지도 못했지만 있는 돈을 지키지도 못했다.
회사건물 1층 카페에서 진행하는 명함 이벤트에 참여를 했다. 3일 뒤,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재무설계사로 본인을 소개하면서 무료로 재무 컨설팅을 해줄 예정이니 미팅 시간을 잡자고 했다. 회사 앞 카페에서 만난 재무설계사는 얼핏 보아도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였다. 한 참을 나의 연봉, 근무 조건, 얼마를 모으고 싶은지, 노후에 대한 준비 혹은 계획, 3년 내 결혼 계획 등등 이것저것을 묻더니 '음. 개선이 좀 필요하겠네요. 제가 오늘 말씀 주신 내용 가지고 정리해서 다음 미팅에 가지고 오겠습니다. 언제가 편하세요?' 라며 두 번째 미팅도 자연스럽게 잡았다.
첫 번째 미팅은 그렇다고 해도 두 번째 미팅은 슬슬 귀찮기 시작했다.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저녁 늦게서야 회사 앞 카페에서 다시 만난 재무설계사는 나를 위한 재무 포트폴리오라며 10페이지 분량의 스프링 책 한 권을 나에게 건네었다. 미팅이 끝날 무렵 시큰둥한 나에게 재무설계사는 한 마디를 건넸다.
그런데, 직장인이시면서 아직 실비보험 없으시더라고요. 이건 아시겠지만 다 하나쯤은 가입해두고 있어요.
특히 소울대리님은 아직 노후준비 계획도 없으셔서 제가 가져온 상품 한 번 설명드릴게요
귀찮음이 컸던 것인지 아니면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가 미안했는지 나는 재무설계사의 상담을 줄곧 듣다가 결국 계약서에 날인을 하고 월에 40만 원이라는 돈을 납입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까맣게 그 보험가입에 대한 기억을 내 머릿속에서 지웠다. 항상 부족한 월급이었지만 월급날이 되자마자 40만 원은 꼬박꼬박 빠져나갔다. 그렇게 1년쯤 지나서였을까, 우연히 인터넷 카페 글을 보게 되었다. 바로 사회 초년생이 보험사기를 당한 것 같다며 고민의 글을 올린 것이었는데 왠지 그 글에 담긴 내용이 나의 상황과 너무 닮아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나 역시 댓글을 달았다. 하루 만에 나에게 카페에서 활동 중인 재무전문가가 나의 보험 약관을 볼 수 있느냐면서 내용 공유를 요청했다. 묵혀둔 책상 서랍에서 보험 약관들을 하나하나 스캔하여 재무전문가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한 참 뒤, 답장이 왔다. '사기당하셨어요'
저축성 보험이 아니라 종신형 보험으로 모두 가입이 되어 있었고, 심지어 중간 해지를 하더라도 내가 받는 금액은 절반에 반도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모든 금액을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았다. 실제로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동료 중에 한 분은 전액을 모두 돌려받았다는 경험을 들려주셨기에 용기를 가지고 아래와 같이 준비해 보기로 했다.
1) 종신형 보험임을 고지받지 못했음을 증명
2) 보험사 본사에 내용증명 + 보험설계사 컴플레인
3) 보험사 본사 측에 수시로 전화를 넣어 억울함을 토로
1년 만에 연락한 보험설계사는 나의 억울함에 '아니 그런데, 그때 네가 사인을 했잖아' 라며 반말과 함께 적반하장식의 억울한 태도를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음성과 카카오톡 메시지 모두 '고지하지 않았다'는 것은 쉽게 증명할 수 있었다. 내용증명서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양식들을 다운로드하여 나와 비슷한 사례로 내용증명을 작성해 본 재테크 카페 회원들의 예시를 바탕으로 작성을 했다. 그리고 보험사에 정식으로 컴플레인을 걸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보험사 측에서도 나와 같은 피해사례도 많을 것이며 나의 억울함만으로 무조건 나에게 전액을 다 환불해 줄 수 없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컴플레인을 건 그 순간부터 기나긴 싸움이 시작되었는데, 나의 내용증명서만 본사 담당자에게 배정되기까지 1.5개월이 소요되었고 그다음부터도 배정된 담당자가 나와 보험 설계사의 입장을 확인하기까지 2개월이 소요되었다.
- 담당자 : 저희가 확인한 결과로는 설계사는 고지를 했다면서 억울해하시고, 고객님께서도 강경하시니 저희도 어쩔 도리가 없어요. 삼자대면을 고려해 볼 수밖에요.
- 나 : 그럼 삼자대면을 언제 해야 하는 걸까요?
- 담당자 : 그건 또 이제 저희가 일정을 잡아야 해서..
3개월 내내 지지부진 나아지지 않자 나는 정말 힘이 빠졌다.
5개월의 끝나지 않은 싸움 끝에 결국 나는 내가 낸 돈의 절반도 되지 않은 35만 원 정도를 받고서 싸움을 끝냈다. 나는 졌다. 대략 500만 원이 되는 돈을 잃고서 내가 깨달은 건 정말로 '나'에 대한 증오스러움과 무지에 대한 탄식이었다. 물론 나에게 고지해주지 않고 오히려 당당히 나에게 컴플레인을 걸어 억울하다는 보험설계사도 너무나 미웠다. (고작, 수수료 얼마한다고 사회 초년생에게 보험사기를 치느냐고 증오했다 ) 단순히 '계약서를 잘 읽자'를 배운 것은 아니었다. 정말 무서운 세상에서 나를 지킬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의 자금 상황은 지속적인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