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보는 미용실에서 시작한다

by 오흔

너 지금 가진 돈이 얼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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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나에게 투자 기회가 온 것은 세 번째 이직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당시 나의 플랜 중에 하나였던 연봉 협상이 회사와 원활하게 해결되지 않았으므로 이직을 준비했고, 두 번째 회사에서 다행히 연봉을 높일 수 있었다. 다만, 근무한 지 6개월 만에 내부적인 팀 이슈로 각자도생의 길에 들어서게 되어 세 번째 이직을 앞둔 시점에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내 수중에는 첫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 1,000만 원이 내가 가진 현금의 전부였다.


마트에서 장을 보던 어느 평범한 주말 엄마에게서 급한 전화 한 통으로 나의 투자는 시작되었다.

평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재건축/재개발 아파트 매물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엄마는 좋은 투자처를 찾았다며 나에게 당장 가계약금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딸이 부동산 공부를 하고, 내 집 마련을 위한 꿈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엄마였지만 문제는 엄마는 내 자금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투자정보를 가져온 것이었다. 심지어 아파트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당장 하루 만에 가계약금을 보내라니.. 나는 당황스러웠다. 결국, 엄마와 마트 한편에서 성인이 된 이후로 오랜만에 모녀 싸움이 발발되었고 결국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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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박하게 진행된 나의 첫 매매 기록



그동안 공부했던 것들을 써먹을 틈도 없이 빠르게 파악해야 했지만 시간상 아파트를 임장 가기에는 너무 촉박한 시일이라 나는 부동산 사장님과 통화를 했다. 그리고 내가 알아낸 것들은 대략 아파트의 상태, 급매 이유, 현재 아파트 시세, 개발 호재 등등이었다. 모든 통화를 마치고서 투자가 아닌 '실거주용'으로 적합한 물건이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다음 문제는 바로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였다.





나 지금 1,000만 원 밖에 없는데,
이 집을 살 수 있을까?




투자가 아닌 실거주이기 때문에 빠르게 '매매하자'는 결정을 내려놓고 내가 해결해야 할 것은 당장 이 집의 매매 자금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내가 가진 순수한 현금 첫 회사 퇴직금을 제외하고 마이너스 통장, 예적금 담보대출, 마이너스 통장 등등을 모두 알아보았다. 실제로 '생애최초'라는 혜택을 통해서 저금리 / 고정금리의 '아낌 e- 보금자리론'을 통해 집 값의 65% 정도는 받을 수 있었고, 그 외에 금액은 어떻게 하든 마련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나는 MBTI에 'J'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돈 그리고 일 앞에서는 'J' 형 인간이 된다. 보금자리 대출은 [한국주택금융공사] 홈페이지에서 대략 나의 집값을 네이버 부동산 시세가 아닌 KB 국민은행 시세 기준으로 얼마 정도 받을 수 있는지 대략 조회가 가능하다.

나의 경우는 조회된 금액 그대로 받았다. 네이버 부동산 시세로 2억임에도 KB 국민은행 부동산 시세가 1억 8천이라면 1억 8천 평가기준으로 대출금이 산정되니 만약 매매할 계획이라면 매매가 기준을 필히 살펴보고 대출조회를 해봐야 한다. ** 22년 기준으로 아낌 e-보금자리론에서 23년 특례보금자리론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리고 대출을 실행할 때에는 무조건 신용대출 > 담보대출 (예적금) > 보금자리론 순으로 진행을 해야 한다. 만약 역순으로 보금자리론부터 실행했다가 신용대출을 생각한 만큼 받을 수 없다. 마이너스 통장은 직장인의 평생 동반자므로 여건이 된다면 미리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 좋다.


불행 중 다행스럽게 동생과 아빠모두 저금리 대출로 각각 1,000만 원 정도 대출여력이 가능했기에 이자를 갚는 조건으로 (가족이지만 필히 이 부분은 합의하는 게 좋다) 2,000만 원을 빌렸다. 그렇게 해서 겨우겨우 보금자리론 대출 외에 내가 마련할 수 있는 돈들을 마련하기로 하고 '매매'를 결정했다. 가족 간에도 일정금액이 넘어가면 '차용증'을 쓰도록 되어있는데 우리 가족의 경우 차용증을 쓰기에는 적은 금액이라 무조건 월마다 내가 이자와 원금을 갚는 것으로 자동이체를 등록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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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나의 가계약금을 보낸 후 매매일자는 6월로 잡고 넉넉하게 대출을 준비했다. 물론, 내가 백수신분이라서 빠르게 정규직 직장을 얻어 조금 더 나은 신용대출을 받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렇게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면서 대출을 준비하고, 하루 정도 연차를 내어 매매할 집과 제일 가까운 은행에서 보금자리론 대출실행을 받았다.


나는 빠르게 정규직인 직장이 필요해서 이곳저곳 부리나케 관련직무와 업종으로 넣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나는 집 매매를 위한 대출여건이 절실했기에 기업의 상태와 문화, 복지 등은 전혀 보지도 않고 무조건 합격할 수 있는 곳에 넣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는 말을 이제야 실감을 할 뿐이다.


그리고 6월, 드디어 첫 집을 매매하는 날. 법무사, 우리 가족, 부동산 사장님, (전) 집주인, 나의 보금자리론 대출 실행사님이 한 자리에 모였다. 살면서 이렇게 큰 단위에 돈이 내 통장에서 쑥쑥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르겠다. 그 모습을 보고 여러 차례 매매계약을 해본 엄마는 나를 보고 왜 이렇게 긴장을 하냐며 웃었더랬다.


하늘 아래 내 집 마련을 위해서 평생을 벌고 혹은 몇 년을 위해서 노력하는데 그 매매의 순간은 겨우 10분 남짓이다. 모든 서류들은 전문가 사이에서 슉슉 지나가고 나에게는 '이거 맞으시죠? 사인' , '자 이제 대출 실행되었어요. 확인하시고요.' , '이 돈만 보내시면 정말 끝입니다' 등으로 시키는 것만 하면 문서 하나로 내가 집주인이 되었다. 집 값만 마련하면 되는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집 값 외에도 각종 세금과 매매거래 과정에서 떼이는 금액들도 만만치 않았다. 모든 거래가 끝나고서 부동산 사장님과 엄마는 인사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이 투자에 대한 정보가 시작된 곳이 바로 '미용실'이었다. 엄마는 근 10년을 한 번도 미용실 근처에 간 적이 없는데, 엄마의 지인 분께서 머리를 하다가 아는 언니의 언니로부터 '똘똘한 한채 ( =바로 나의 집)' 투자 정보를 듣고 그중 하나를 엄마에게 소개해준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미리 지인분과 이 아파트 임장과 세입자까지 만나고 온 것이었는데, 집을 본 적도 없는 나는 무조건 엄마와 부동산 사장님의 말씀 그리고 내가 임장으로 둘러본 지역의 상황들을 어렴풋하게 기억하여 '내 집'을 마련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투자 정보는 부동산 밖에서도 공유되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내가 이 집을 매매한
가장 큰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급매]였다.


시세차익을 노릴 요량은 없었지만 근방 지역의 매물시세를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이 매물이 부동산 사장님과 전주인이 짜고 치는 급매인 것인지 찐으로 급매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집을 사더라도 고금리 시대에도 고정금리 이자를 내면서 오를 때까지 기다리거나 혹은 계속 묵혀두다가 전/월세로 돌려 세입자를 받는 것으로 활용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이 들었다. 실제로 이 집을 매매하고 바로 1개월 만에 내가 계약한 집의 위층도 매물을 내놓았는데 내가 거래한 가격보다 4,000만 원이나 오른 가격으로 매물을 내놓았음에도 금세 팔렸다.


물론, 당시의 흐름이 내 집 마련을 위한 영끌족과 부동산 투자의 부흥이라 아파트들이 모두 오를 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불황기에 낮아진다고 해도 나는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 판단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불황기에 접어든 지금 내 집값은 많이 떨어지지 않았고, 매월 나가는 대출이자는 모두 합하여 50만 원 정도이다. 생각보다 나는 영끌을 하지 않았다. 영끌이라 함은 내 월급에 2/3 정도를 대출 이자를 내는 수준인데 나는 4/1 정도만 대출 이자로 내고 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나는 내 수준에 맞는 집을 적당하게 매매했기 때문이다.

투자와 실거주를 부동산 공부하면서 우선수위를 매긴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평생에 월급쟁이로 살 자신은 없었지만 사는 동안 고금리/저금리 시대에 높은 이자율을 감당하지 못해서 거리에 나앉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완전히 배재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집 마련으로 자금의 안정성을 확보한 후에 투자를 다음 단계로 삼고 싶었다.



그렇게 6월 나는 집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집을 매매하면 끝일 줄 알았지만, 집을 매매하고 더 큰 선택지와 결정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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