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사람들을 좋아했다.
특히나 '대접' 하는 것을 좋아했고,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늘 내 집이 있다면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가 제일 큰 식탁을 사서 내가 좋아하는 가족, 지인들을 초대하고 나의 음식을 대접하는 그런 일이었다. 물론, 그에 비해 나의 인간관계가 너무도 좁고 깊기 때문에 내가 원했던 다이닝 만찬의 그림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내 인생 첫 요리는 바로 '라면'이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늘 초등학생이던 내가 먼저 집에 와서 학원을 돌고 온 동생을 기다렸다.
갑자기 배고프다는 동생을 위해서 무언갈 해주고 싶은데 요리를 해본 적이 없으니 난감한 노릇이었다.
심지어 수중에 슈퍼 가서 그 흔한 빵이라도 사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돈도 없었다. 엄마가 해놓고 간 밥솥에는 밥이 없었고, 냉장고에는 김치뿐이었다. 그러니 내가 생각한 것은 바로 가스레인지를 켜는 일이었다.
엄마가 하던 모습을 기억해 밸브를 돌리고 시계방향으로 한참을 누르고 있으면 불이 켜졌다.
물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모른 채 눈대중으로 냄비에 물을 넣고 라면을 끓였다.
수프를 넣어야 하는지 면을 넣어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일단 기억나는 엄마의 모습대로 흉내를 내었다.
그때 한강라면을 이상하리 만치 잘 먹었던 동생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그 이후로도 이상하겠지만 내가 유일하게 못하는 요리 중에 하나가 바로 '라면'이다.
그 이후로 틈틈이 동생을 실험 삼아 밥솥 카스텔라, 김치찌개, 된장찌개, 비빔밥 그리고 알 수 없는 여러 요리들을 선보였다. 특히 밥솥 카스텔라는 제대로 실패해서 동생은 꽤 오래도록 카스텔라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자취를 하면서 본격적인 생존 요리가 시작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집밥으로 나는 나를 위로하곤 했다.
퇴사하고 자연스럽게 엄마의 생신을 맞이해 나는 가족들을 우리집으로 모두 초대했다. 가족들이 편하게 앉아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접이식 탁자도 구매했고, 메뉴선정도 나름 까다롭게 준비하였다.
까다로운 입맛의 아빠를 위해서 몇 날 며칠 고심 끝에 꽃게탕을 준비하고 (꽃게탕을 처음 끓여봤다) 엄마가 좋아하는 연어 샐러드와 좋아할 것 같은 명란 솥밥을 준비했다. 초등학생 입맛에 걸맞은 동생을 위해 라구파스타를 준비했고, 가족들이 모두 즐길만한 샐러드도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새벽배송으로 오는 식재료들을 아침부터 손질하고 준비했다.
잠시 양념과 간을 맞추는 것이 헷갈릴 때는 빠르게 유튜브 요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동생은 투뿔 한우를 사 왔고, 나는 한정식 못지않은 한 상을 차려냈다. 늘 어느 식당을 가든지 마음에 들면 마음에 드는 대로, 마음에 안 들면 안 드는 대로 항상 피드백을 주던 아빠는 나의 꽃게탕을 맛보고는 '맛있네, 괜찮네'라는 말 한마디를 툭 던졌다.
연어 샐러드를 좋아하는 엄마는 연어를 그리고 처음 맛보는 명란 솥밥에 빠져서 연신 박수를 치며 정말 맛있게 식사를 하셨다. 새로운 뿌듯함이고 새로운 행복이었다. 내 집에서 내가 차린 밥상을 가족들이 먹는다는 건. 요리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서 나눔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퇴사를 하고서 서툰 솜씨이든 부족한 음식의 가짓수이건 내가 대접하고 싶은 만큼 나의 음식과 시간을 나누어준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남자친구를 초대해서도 집에서 연말, 크리스마스, 신년을 맞이해서 '홈파티'를 했다. 손수 음식을 만들고 직접 해 먹고,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으면서 차려낸 한 상이 었다. 신년을 맞이해서는 (전) 회사 동료들이 반가운 선물과 소식을 들고 찾아와 또 한 번 집들이의 시간을 만끽했다. 요리를 하고보니 남자친구와 잠시 소꿉놀이를 하는 기분도 들었고, 생각보다 설겆이를 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 혼자 숨 쉬고 나만의 취향으로 꾸며낸 나의 작은 숲으로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건 그리고 나의 정성 어린 혹은 고민 끝에 배달해 온 갖가지 음식을 나누며 시간을 공유한다는 건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요리를 잘한다 못한다는 큰 의미가 없다. 그저 배달음식을 시켜먹더라도 나의 공간에 내가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과 나의 공간에서 시간을 나눈다는 것.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여유없이 바쁜 밥벌이 속에서 내가 미쳐 잊고 있었던 부모님이 좋아하는 반찬,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 남자친구 혹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인들과 나누는 음식 속에서 오고가는 대화들의 희노애락들은 새삼스럽게 나를 웃기고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