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이 모자라, 어디까지 앉아봤니?

by 오흔

퇴사하기 전부터 내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던 두 가지가 있다.


1. 나 영상 배울 거야.

2. 나 글을 쓸 거야.


영상을 배워서 ~ 을 할 거야!라는 대대적인 목표는 없었다. 다만, 영상으로 소소한 알바를 할 수 있는 정도의 부업거리 능력을 갖춘 초보 편집자 그리고 글을 써내려 갈 수 있는 작가 타이틀이 주어지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작은 목표가 있었다.




퇴사 15일 전부터 사실 마음은 많이 떠있었다.


왠지 주변 동료들도 나를 은은히 피하는 것 같았다. 이미 떠나는 것이 예정되어 있는 사람에게 무얼 더 바라겠느냐만 스스로 느낀 왜곡된 감정이었을지라도 나는 회사에 그리고 동료들에게도 조금씩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20대였더라면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요청할 때는 언제고? 이제 나간다고 하니까 인사도 안 하는구나?!'라는 마음으로 괜히 혼자만의 생각으로 상처를 받고도 남았을 텐데, 30대가 되고 보니 상처 대신에 다가온 현실로서 '퇴사 준비나 하자'는 마음이 더욱 컸다.


매일매일 바빠서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어 '방광염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몸에서 나에게 자꾸 어딘가 아프다는 신호를 보냈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조금씩 퇴사를 위한 준비를 끝내고 보니 바쁜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오롯이 혼자 여유가 생겼다. 아이러니했지만 뭔가를 더 하지는 않으려고 했다. 오히려 그게 내가 그리고 동료들이 서로가 서로를 불편해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은 모두 '정리' 그리고 '회고'의 시간이었다.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그동안 내가 놓쳤던 것들을 다시 기록하고 그동안 읽지 못했던 뉴스레터와 산업이슈 그리고 그동안 작성했던 제안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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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글재주가 있는지 없는지도 판단이 안되었지만 그저 내 생각을 좀 어딘가에 쓰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브런치의 문을 두드렸지만 '작가신청'이라는 단어는 왠지 나를 비웃거나 '네가?'라고 얘기할 이름 모를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근거 없이 떠올라 내 글에 스스로가 자신이 없어져 늘 서랍 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더 늦기 전에 '글' 좀 써보자는 마음으로 동료들이 묻는 내 퇴사 계획에 '글쓰기'를 넣어 말해보았다. 나 혼자 생각하던 일을 입 밖으로 사람들에게 꺼내고 보니 정말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씩 여유가 생긴 퇴사를 앞둔 그날부터 나는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어떤 글이라도 좋았다.


제품 리뷰, 블로그, 메모, 생각기록, 일기 등등. 그러다가 '나도 한 번 전자책을 출판해 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퇴사를 앞두고 보니 참 겁이 없어진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무조건 전자책을 썼다. 내가 집을 산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번도 '삭제' 하지 않고 교정하면서 써 내려갔다. 어느새 1페이지, 10페이지, 33페이지가 되었고. 나는 40페이지를 썼을 무렵 '퇴사자' 로서 '백수'가 되었다.


20240119_171006.png 첫 승인 메일은 나에게 '용기' 를 주었다 '뭐든 해도 괜찮아'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글을 썼다.


다행히 마음 잡고 매일 9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책을 보고, 무조건 내가 편한 자리 어디에서든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썼다. 1시간, 3시간, 6시간. 그렇게 시간을 하루하루 보냈다. 정말 이상하게 40페이지가 되는 전자책을 읽고 읽는데 어제 읽은 글과 다르고, 오늘 써내려 간 문장이 다음날이 되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계속 고치고 고치다가 문득 다시금 내 밑에 있는 '넌 안될 거야'의 부정적인 마음이 나의 글을 망설이게 했다. 고민 끝에 그렇다면 전자책이 아니라 브런치로 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내가 써 내려간 전자책 내용들을 브런치 작가 신청의 글로 내었다. 그리고 나는 단 번에 승인이 되었다.






나는 사진과 영상에 소질도 없지만 감각도 없다. 특히, 타인의 사진을 찍어줄 때 내가 찍는 사진은 정말 7등신도 2등신처럼 보이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을 가졌다. 그만큼 잼병이다. 내가 카메라에 찍힐 때도 그렇다. 그런데 사진과 영상을 다루는 남자친구를 만나고 보니 모든 순간에 포즈를 취하고 자연스럽게 영상에 담긴 내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영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20240119_171310.png 만든 영상들을 유튜브에 올려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부업거리로 컷 편집이나 배워볼 요량으로 무턱대고 맥북을 샀다.


심지어 대용량으로. '맥북 값만큼 벌어보자'는 요량으로 구매하고서 처음에는 윈도에만 익숙해진 10년 된 손을 맥에 적응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그리고 남자친구에게 부탁하여 영상편집 툴을 설치하고 조금씩 유튜브를 찾아가면서 배우기 시작했다. 퇴사를 앞두고서는 계속 '툴'만 손에 익혔다.


남들이 영상편집으로 프리미어를 배울 때, 나는 파이널컷으로 연습을 했다. 대부분 프리미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호환성, 편리성, 교육자료도 가장 많이 나와있고 영상산업에서 10명 중 7명은 프리미어를 사용한다. 아직 프리미어 사용은 해보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파이널 컷에 익숙해진다면 프리미어도 배워볼 요량이다.


그리고 백수생활을 시작하면서 글을 쓰고, 나머지 시간에 영상을 만들었다.


신기하게 글에 3시간을 넘게 집중했는데도 영상 작업을 하면 또 연속으로 4~5시간 집중이 가능했다. 그리고 재미가 있었다. 다행스럽게 남자친구가 여행을 하면서 찍어준 영상으로 연습하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혼자서 웃기도 하고, 혼자서 '감성적인데!' 만족하며 영상을 편집했더니 남자친구도 처음에는 피드백을 주다가 나중에는 '정말 잘 만들었다' 며 칭찬을 해주었다.


첫 영상이 제대로 나오기까지 나는 총 4번의 영상을 만들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영상을 위해서 4번의 초안 영상이 나온 것이었는데 이렇게 작업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내 손에도 '영상작업'이 익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걸로 부업을 하면서 돈을 벌 요량은 생기지 않았다. 다만, 영상을 만드니 유튜브도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그동안 만든 여행 영상들을 모두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얼마나 할애할 수 있어?



직장생활을 할 때, 모두들 퇴근하면 자기 계발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하다.


직장에서 우리가 보내는 9 to 6, 10 to 7 만큼 내가 하고 싶었던 혹은 배우고 싶은 일에 할애를 한다면 무조건 그 일이 새롭고 처음 하는 일이더라도 미비하지만 소정의 혹은 생각보다 큰 성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 가지는 루틴과 쏟아붓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업무에서의 숙련과 안정성을 찾을 수밖에 없을 뿐, 다른 곳에도 그만큼 할애한다면 찾아낼 수 있다.


지금 당장 없는 꿈도, 지금 당장 없는 취미도


꿈이 없다면 아직 무얼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이유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뜨개질, 그림 그리기, 재활용 모아서 공예품 만들기, 등산하기 등 무엇이든 내가 직장에서 보낸 시간만큼 할애한다면 분명 본인만의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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