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동 떨어져 외로운 팔자 그 자체야
나는 어렸을 적부터 참으로 '미신'을 좋아했다. '맹신'은 아니라 그저 '좋아했다'.
무언가 내가 알 수 없는 미래를 점쳐주는 것 같고, 내가 알 수 없었던 내 자신에 대해서 정의를 해주는 기분이라서 묘하게 믿었고 묘하게 믿다가도 돌아서서 잊어버리곤 했다. 그저 내가 타로를 보고, 사주를 점치는 것은 '재미'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내 앞 날이 궁금해서 가끔 사주, 타로집을 기웃거렸다.
백수가 되고서는 항상 뒷 일로 미뤄두었던 일들을 정리하게 된다. 평소에 하지도 않던 옷장정리, 집구석구석 먼지청소, 화장실 변기 청소 등등이 그렇다. 그러다가 정리는 내 블로그로 넘어왔다. 사실 그동안의 기록들을 회상도 하고 정리도 하고 겸사겸사 들어왔는데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바로 1년 전, 바로 지금 3만 원을 주고 사주를 봤던 그 기록의 날들이었다.
취준생 때에는 나름대로 친구들이 알려주는 용한 점집, 사주집을 가서 당시 나에게 거액이었던 5만 원 혹은 10만 원을 주고서는 점을 봤었다. 심지어 재미 삼아 거액을 주고 사주팔자를 보러 갔었던 적이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생각하면 그 어떤 것도 내 '미래'를 맞추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연인이 있다면 '맞춰가면 잘 살 수 있다' 혹은 '나이 40대가 되면 모든 것이 다 풀린다' , '지금이 삼재다. 조금만 더 버텨라'의 으레 사람들이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말들 뿐이었다. 그런데 왠지 분위기와 두루두루 걸쳐있는 신의 영역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아이템들에 위화감을 느끼곤 '맞아요'라고 늘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블로그로 돌아와 작년 이맘때 새롭게 시작한 해를 '즐겁게' 혹은 '안전하게' 보내기 위해서 찾았던 점집의 후기를 기록한 1년 전 나의 글을 보게 되었다. 당시에도 재미 삼아 신년운을 점쳐보고자 들어갔었는데 무려 하루동안 2곳의 사주를 보게 되었다. [A] 곳은 나에게 '이직운이 좋으니 꼭 이직을 하라'라고 말했고, [B] 곳은 나에게 '이직운은 있지만 그래도 올 해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를 얘기해 주었다. 나는 사실 [B]에 더 신뢰를 갖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강단 있는 말투가 나의 신뢰를 얻었던 것 같다 ) 대부분의 내용이 지나고 보니 이러했다.
1. 몸을 사리도록 해라, 과로사로 쓰러질 수 있다 > 실제 나는 과로사로 쓰러지기도 했고, 위경련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2. 올 해는 동료들을 돕는 팔자다. 하지만 그만큼 명성을 얻을 수 있다. > 실제로 내 밑에는 8명의 팀원이 있었고, 동등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팀장으로서 모든 팀원들의 도움에 지원을 나갔다. 명성은 잘 모르겠지만, 모두들 내가 퇴사를 하던 날 회식 자리에 참석이 어렵더라도 인사 한 마디씩은 '모두들' 건네고 가주었다. 나는 아직도 그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그리고 물경력과 정시적인 스트레스 외에 나는 사회에서 만나기 힘든 동료 2명을 얻었다.
3. 이직운이 있지만, 올 해는 때가 아니다. 무조건 몸을 사려라 > 생각보다 이직을 위한 면접제안으로 3~4곳을 보았는데 이상하리 만치 참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심지어 지인 추천으로 면접본 곳에서는 나에게 '꿈이 너무 크시다'라는 이유로 나를 탈락시켰는데, 후에 내 대신 뽑은 사람 때문에 한 참 고생하면서 내가 재면접을 볼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왔었다.
4. 9월 대폭발과 구설수가 있으니 조심 > 실제로 나는 9월 말경에 '퇴사'를 결정했고 10월에 통보를 했다. 굳이 따지자면 '대폭발'을 한 건 맞다. 그동안의 부조리함과 쪼들림(?)에 극대노를 하며 마음이 완전히 돌아섰다. 대신 구설수는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상대 클라이언트에게 '대응이 느리다'는 이유로 컴플레인을 받았다.
5. 연봉협상이 높지는 않을 것 > 실제로 내 입장에서는 업계와 회사를 고려했을 때 많이 올랐다고 느꼈지만 실제 나의 연차와 업무 범주를 고려했을 때 협상이 높지는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로 생각나는 것들을 블로그에 적었었는데 그곳에 적힌 내용의 결과를 보면 10개 중에 7개는 맞고, 3개는 틀렸다. 그래도 꽤 적중률이 높은 사주였었다. 아무래도 빅 데이터 기반으로 맞냐, 아니냐의 확률 게임인 사주를 볼 적마다 공통적으로 듣는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아직 그 이야기들이 정말 일지에 대해서는 그 나이대가 오지 않아서 확인할 도리가 없다.
어느 동기부여 강사는 자신이 목표가 있고, 그에 따라 해야 할 일들이 계획이 되어있다면 그 일을 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신년마다 점집을 갈 이유가 없다고 쓴소리를 했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항상 미신은 사람들의 호기심 속에서 '궁금증'을 자아낸다. 난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혹은 난 전생에 정말 뽀로로였나? 왜 이렇게 노는 걸 좋아할까? 언제쯤 일이 좀 풀리려고 아직도 삼재인 걸까? 답답함과 궁금증에서 비롯된 사주팔자와 전생을 찾으러 연말연시가 되면 그렇게 점집, 타로집을 기웃거린다.
백수가 되고서 지인으로부터 굉장히 용한 점집을 소개받았다. 심지어 신내림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점집이었다. 그래서 예약을 걸고, 곧 방문할 예정이다. 아마 이렇게까지 시간이 없었다면 거기가 있는 유명한 점집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주에 대한 평은 또다시 브런치에 남겨보겠다 ) 어쩌면 점괘와 전생이 현재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과거를 지나 미래를 궁금해하고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과의 합을 궁금해하는 건 '지금 다 괜찮다'라는 답을 타인으로부터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로부터 확인받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