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구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ena Sep 30. 2015

추억이 되는 순간

우리는 유적지 같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터키 영화가 제작 되었던 세트장이라고 했다.

마른 나무를 한 곳에 모아 불을 피우고, 그 불을 불빛 삼아, 또 난로 삼아 넷이 모여 앉았다.

깜깜한 밤, 그 안에 보이는 거라고는 오로지 하늘만을 벗삼는 별들과 활활 타오르는 불,

간간히 들리는 찌르레기 소리, 그리고 우리들.

제이크가 터키 노래를 재생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는 춤을 정말 잘 췄다.

그에 비해 몸치임을 온몸으로 인증하던 나, 

그리고 그 풍경을 이불 삼아 하늘을 보고 서로에게 기대 누워있던 그와 그녀.

너를 생각했다. 다시는돌아갈 수 없는 그 날들의 너를 그리며 나는 너를 몹시 추억했다.

우리가 여기 함께 있었더라면,아니 어디라도 함께 있었더라면.

추억 속에 나를 우겨 넣는 것은 그 때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그 때의 너를 아쉬워하는 미련들을 아름다운 착각으로 미화 시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슬픈 짓이다

그 때의 내 마음이 그리운 것 뿐인데 어느새 나는 또 그 순간으로 달려간다.

그 때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이 꼭 닮을 거라는 착각과 함께, 그리고 매우 숨가쁘게.

그렇게 달려간 곳에서, 참 애석하게도, 당신의 모습들은 찾을 수가 없다.

그저 미래의 나를 기다리고 있던, 미래의 내가 달려와 한번 꺼내봐 주기를 기다렸던,

그 날들의 내가 슬프게 미소 짓고 있겠지.

한 잔에 너, 또 한 잔에는 추억이 될 이 순간을, 

그렇게 몇 잔의 보드카를 기울였는지 모르겠다. 

터키 노래에 맞춰 춤을 추다가, 처음 들어본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다가,

너를 그리워도 하다가, 또 별 것 아닌 한마디에 꺄르르 웃기도 하다가.

추억이 될 지금 이 순간에, 이미 추억이 된 너를 잔에 담고,

불 냄새가 온 몸에 배어 취하는 줄도 모른 채 밤이 깊어 간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은 그 긴 시간들 중 아주 짧은 정도의 순간만 뇌리에 남는다.

추억은 치사하게도 내 머릿속에 동영상이 아닌 늘 몇 장의 스냅사진만을 선물할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 때문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