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의 나는 사계절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에서 나 혼자만 남극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날 죽어라 외면하는 님의 침묵,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연애질,
매번 고배를 마셔야 했던 면접에 제로가 되어 사라지는 통장 잔고,
그 마저도 모자라 불어나는 빚 덩이들, 속상해서 마셔대는 술 탓에 더불어 늘어나는 체중들까지.
모든 것들이 조금은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랬으면 그냥 내가 변하면 되었다.
어리석게도 그 때의 나는 어디론가로 떠나면 그 어떤 것이라도 조금쯤은 변할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렇게 아프리카로 달려온 나의 계절 역시 다르지 않았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나는 여전히 남극이었다. 아니, 오히려 더 추웠다.
아무도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고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꽤나 당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온갖 자격지심과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언제 어디서나 주눅드는 내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어디로 가야 따뜻해 질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더 이상 힘들다고 외롭다고 징징거리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마도 내가 너무 많이 말해서 이제 아무도 내 얘기를 듣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소통되지 않는 우정은 점점 무너지는 중이었고, 곧 모든 것이 부질없어졌다.
간신히 손에서 붙들고 있던 것들마저 빠져나가는 중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또 어리석게도 나는 한국에서 더 멀어져 떠날 준비를 했다.
내가 떠난다고 님의 침묵이 끝나는 것은 아닌데,
내가 떠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저 내게 필요했던 건
그들의 삶에서 나의 삶을 쥐고 있을 용기,
내 삶에 대해 흔들리지 않을 확신,
그들의 삶이 내게 조금의 영향을 끼칠지언정 그들의 삶으로 엎어지지 않을 정도의 무게,
딱 그뿐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