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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a Sep 30. 2015

Hiro

카파도키아에서 머물며 그린투어를 할 당시,

그 기간은 대만인들의 명절이었고, 때문에 대만사람들이 가득했었다.

투어 차에도 마찬가지로 나를 제외한 10명 남짓한 사람들은 모두 대만인이었다.

그 틈에서 나는 Hiro, 그를 보았다. 커플, 혹은 친구끼리 짝지어 온 대만인들 사이에서

스스로가 대만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섞이지 못했던 그 남자.

투어가 끝나고 헤어질 때 나는 그에게 내일 나와 카파도키아를 돌아다녀보지 않겠냐고 물었고,

그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이게 우리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카파도키아 구석구석을 그와 함께 발로 뛰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그것도 안되면 걷고, 또 걷고.

우리는 서로에 대해 점점 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당신의 얘기를 나는 늘어놓기 시작했고,

그는 자신의 8년 전 첫사랑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짝사랑으로 끝난 그의 첫사랑, 그리고 그 이후 제대로 연애를 시작할 수 없는 hiro.

그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세월의 틈이 무색할 만큼 우리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고,

그렇게 단짝처럼 붙어다녔더랬다.

그는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돌아간 날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가 카카오톡을 설치한 덕분에 우리는 쉽게 그리고 또 자주 연락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케냐로 떠날 준비를 하던 나에게 Hiro는 자신의 한국 방문 계획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를 집에 초대해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또 시간이 날 때마다 그를 만나

신사동, 북촌 같은 서울의 관광지들을 함께 걸었다.

해외에서 만난 인연이 내가 살고 있는 땅 위에서 연장된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설레기도했다.

짧은 한국에서의 일정 이후 그는 다시 대만으로 돌아갔고, 

내가 케냐로 떠난 지 얼마 되지 않던 어느 날.

니가 그 사람을 많이 좋아하고 있는 걸 잘 알지만 

터키에서부터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 같아.

너에게 바라는 건 없어, 그냥 그저 내 마음이 이렇다는 걸 숨기고 싶지 않을 뿐이야.

그의 갑작스럽고 담담한 고백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거절하는 게 당연했다. 그는 나의 짝사랑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처럼, 예전처럼 지내면 그만이었다.

친구로는 지낼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는 너와 연락을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아 라고 메시지를 보낸 후,

나는 한참 동안 멍했다. 

바라는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부담스러운 거,

받아들여지지 못한 마음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거,

그리고 또 그걸 지켜봐야 하는 당사자.

내가 너를 좋아한 시간들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만 같은 기분.

이런 불편한 마음을 가득 안은 채 나를 대해야 했던 당신의 마음을 우습게도 나는 그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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